국가지정 명승 제76호 선돌.쪼개진 절벽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
기자는 오랜만에 영월을 찾았다. 과거 인근의 평창 태백 정선은 수차례 방문했지만, 최종 여행 목적지를 영월을 정해서 방문하기는 처음이다. 서울에서 2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장릉(莊陵)이다. 조선 6대 왕인 단종의 능이 있는 곳이다.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해 상왕이 된 후 사육신의 복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노산군으로 강등된 뒤 영월의 섬 청령원에 유배된 뒤 17세에 사약을 받고 숨진 비운의 왕이다. 단종이 사망할 당시 고을 사람들은 후환이 두려워서 시신을 거두지 못했고 시신은 그대로 강물에 떠다녔는데, 호장 엄홍도가 지금의 자리에 암장했다고 한다. 장릉은 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조선왕릉이다. 한양으로부터 100리 이내에 모셔야 한다는 ‘경국대전’의 규정을 따르지 않은 유일한 왕릉이라는 게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다. 장릉은 ‘ㄱ’ 자로 꺾여 있다. 영월 장릉은 처음부터 왕릉으로 택지된 곳에 조성한 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조선왕릉 구조와 다른 면이 많다. 왕릉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돌로 된 길을 참도라 한다. 참도는 안쪽은 신의 길인 신도(神道), 오른쪽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어도(御道)다. 일반적으로 일자(一자)형으로 조성하는 데 비해 영월 장릉은 ‘ㄱ’ 자로 꺾여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방랑시인 김삿갓 유적지. |
오후에 찾은 곳은 노루목에 있는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의 유적지이다.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준령의 북단과 남단에 위치한다.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3도 접경지역으로,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 노루목이다. 김삿갓의 이름은 김병연이다. ‘삿갓 리’ 자를 써서 기립이라고도 한다.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로 있다가 반란군 세력에 투항한 것을 두고 비난하는 시로 장원 급제한 것을 수치로 여겨,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단장을 벗을 삼아 각지로 방랑했다. 특유의 풍자와 해학과 재치가 담긴 수많은 시를 남겼다. 원래 전라도 동복(지금 전남 화순군)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아버지를 찾아 전국을 떠돌던 둘째 아들 익균이 주거지인 하동면 노루목 이곳 골짜기에 묻었다. 그의 묘소는 1982년 영월 향토사학자 장암 박영국 선생의 노력으로 처음으로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김삿갓 복장을 한 채 방문객에게 재밌으면서도 친절하게 김삿갓의 모든 곳에 관해 설명해주는 이가 있어 방문의 즐거움을 준다.
◆재미와 교육이 가능한 테마가 있는 박물관 투어
2000년대 중반부터 영월에는 각종 박물관이 들어섰다고 한다. 노무현정부 때 지방자치단체들의 자생력 강화를 위해 지방 특화 프로그램을 지원했는데 당시 영월은 박물관 특구로 지정된 후 박물관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조선민화박물관을 꼽을 수 있다. 국내 최초의 민화 전문 박물관으로 2000년 7월에 문을 열었다. 소장하고 있는 4500여점의 민화 유물 중 250점을 상시 순환 전시하고 있다. 요청하면 관람전문 해설가의 재미있고 교훈적인 민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현장 해설사는 기자에게 “민화는 폭넓게는 왕실의 화려한 병풍에서부터 허름한 여염집 벽장문까지 두루 생활공간을 장식했던 우리의 생활문화였다. 선조들은 수복병풍 앞에서 돌잔치를 벌이고 문자도 앞에서 천자문을 외웠으며, 화조도 병풍 앞에서 첫날밤을 밝히고, 늙어서는 노안도 앞에서 손자 재롱을 보고, 생을 마무리하면서는 모란병풍을 둘렀다”고 설명했다. 2층에 별도의 공간에는 조선시대 춘화 작품도 상설 전시하고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19금이다.
호안다구박물관. 호안다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옛 다구 세트. |
별마로천문대 |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라는 뜻의 별마로천문대는 영월읍 영흥리 봉래산(799.8m) 정상에 건설된 국내 최대 규모의 천문대이다. 연간 관측일수가 196일로 우리나라 평균 116일보다 훨씬 많아 국내 최고의 관측 여건을 자랑한다. 지름 80㎝ 주망원경을 비롯한 보조망원경 13대 등 모두 14대가 있다. 영화 ‘라디오스타’ 촬영지로 유명한 이곳 정상에 서면 영월읍내와 영월을 에둘러 흘러가는 동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후 늦게 찾은 이곳에서 기자는 별 공부와 함께 일몰의 장관을 목격하는 행운을 얻었다. 칼바람은 세찼지만, 코끝으로 느껴지는 청량감은 그간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것 같아 잠시나마 행복(?)했다. 봉래산 정상이라 겨울철에는 칼바람이 살을 에는 듯하다. 이맘때 방문객은 목도리 장갑 방한모 등 완전무장이 필수다.
영월=글·사진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