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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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숍 회장 '영국판 맷값폭력'… '미투'로 거물들 민낯 드러나

올해도 계속되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으로 거물들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미투 물결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전직 대통령에 이어 ‘영국판 맷값폭력’ 사건까지 고발하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9일(현지시간) 영국 대형 유통기업인 아카디아 그룹(Arcadia Group)의 필립 그린 회장의 지속적인 성희롱과 인종차별 행위와 돈으로 피해자들의 입을 막아온 행위를 대대적으로 폭로했다. 아카디아 그룹은 유명 의류브랜드 톱숍(Topshop)과 미스 셀프리지(Miss Selfridge) 등을 보유한 곳이다.

그린 회장은 여성 직원에게 키스를 하고 손으로 몸을 더듬고 직원이 반발하자 비밀유지각서를 요구하고 100만 파운드(한화 약 14억5000만원) 이상을 건넸다. 흑인 간부에게는 그의 레게머리를 조롱하고 “정글에서 창을 던져라”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 이때에도 그린 회장은 100만 파운드를 주고 비밀유지각서를 요구했다. 2009년 발생한 국내 한 재벌가의 맷값폭행을 방불케 한다. 이 사건은 2015년 영화 ‘베테랑’으로 제작돼 다시한번 화제를 모았다. 당시 국내 사건은 “타락한 자본가의 민낯”이라며 외신에까지 보도됐다.

그린 회장은 또 아카디아 그룹 본사를 방문한 중국인 사업가에게 “칭총(Ching Chong)"이라고 하거나 아시아 직원을 음식 이름인 ‘커리’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칭총’은 서구인들이 중국인 등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인종차별 단어다.

텔레그래프의 이날 보도는 실명 보도를 막으려는 그린 회장 측과의 지난한 투쟁 끝에 이뤄졌다.

텔레그래프 취재가 시작되자 그린 회장은 혐의를 부인하며 언론 보도를 막아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실명을 공개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결국 텔레그래프는 지난해 10월 ‘재계 유력 인사’의 비위라고 익명으로 보도했다. 영국 내에서 국민적 관심이 커지자 국회의원이 나섰다. 피터 헤인 상원의원이 면책특권을 활용해 상원에서 그린 회장이 당사자라고 공개했다. 그린 회장은 결국 실익이 없다는 판단으로 소송을 철회했고, 텔레그래프는 실명과 함께 그간의 성희롱 및 인종차별 행위를 상세히 보도했다.

그린 회장의 법률 대리인은 “아주 열정적인 기업인으로서 때때로 지나치게 활기가 넘치거나 성급한 모습이 직원들에게 공격적인 모습으로 여겨졌을 수는 있다”면서도 “어떠한 위법행위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78)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에 대한 미투 폭로도 이어지고 있다. 뉴스사이트인 아멜리아루에다 닷컴 등에 따르면 미인대회인 미스 코스타리카 출신으로 유명한 야스민 모랄레스가 두번째로 아리아스 전 대통령을 고소했다. 2015년 아르아스 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랄레스에게 연락해 책을 주겠다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이때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다. 아리아스 전 대통령은 이미 한차례 고소를 당한 상태다. 모랄레스는 첫 폭로자를 보고 용기를 냈으며 변호사 2명이 변호를 거부해 세번째 시도끝에 현재의 변호인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모랄레스는 “내가 존경하는 유명한 인사의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아리아스 전 대통령은 모랄레스 외에 핵 군축 활동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알렉산드라 아르세 본 에롤드를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됐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홍보국장 에마 데일리, 기자 출신인 노노 안티욘, 책 편집자인 마르타 아라야 등도 피해사실을 폭로했다. 외신은 현재까지 아리아스 전 대통령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은 최소한 6명이며 이번 사건은 중남미 미투 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