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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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기후변화와 트럼프

지구 북반구가 요즘 북극 한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보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지는 외신 사진이 영국, 독일 등지에서 날아온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수은주가 영하 30도 밑으로 떨어지는 한파가 미 중북부를 강타했다.

이럴 때 가만히 있는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니다. 그는 온난화를 ‘미국 산업을 위축시키려고 중국이 날조한 것’이라거나 ‘연구비를 더 타내기 위한 과학자들의 거짓말’이라고 묘사해 왔다. 지난달 말,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제길, 지구온난화는 어디 간 거야? 제발 빨리 돌아와라, 지금 필요하다”고 했다.

유태영 국제부 차장
이때쯤 미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해제됐다. 한동안 일손을 놓았던 과학자들도 직장에 돌아왔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국립해양대기국(NOAA)이 뒤늦게 지난해 기상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2018년은 기상관측 이래 네 번째로 더운 해였다.’ 유럽 기관들도 비슷한 작업을 했다. 분석 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대통령의 주장은 과학으로 논박당했다.

이유는 물론 온난화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2018년 한 해의 기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 흐름이라고 말한다. 역대 기온 1∼3위는 2016년, 2017년, 2015년이었고, 최근 22년 사이에 상위 20위권이 몰려 있다. 한여름을 맞은 남반구의 요즘 날씨만 봐도 과학자들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난달 호주 남부에서는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어져 물고기 100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

그렇다면 혹독한 한파는 왜일까. 이상 한파의 주원인인 북극 소용돌이(Polar Vortex) 역시 온난화가 부추겼다고 과학자들은 지적한다. 극지방 찬 공기의 남하를 막는 역할을 하는 제트기류가 온난화로 약해진 까닭에 북미와 유럽, 동아시아 지역에 번갈아가며 이상 한파가 나타난다는 얘기다. 이른바 ‘온난화의 역설’이다.

온난화의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트럼프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에이미 클로버샤 민주당 상원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취임 첫날 파리기후협정에 재가입하겠다”고 하자, 그는 조롱으로 대응했다. 야외 출마회견장에 눈발이 흩날린 점을 거론하며 “연설이 끝날 무렵 그녀는 마치 눈사람 같았다”고 한 것이다.

2015년 파리협정이 타결됐을 땐 미국의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온실가스 거대 배출국으로서 기후재정 공여 책임도 큰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입장차를 어렵사리 조율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7년 트럼프의 일방적 탈퇴선언 후 파리협정 이행안 후속협상은 난항을 거듭해야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년 전 이렇게 말했다. “인류와 지구의 공익보다 개별 이익이 앞선다면 재앙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이 기후변화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기후안보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재앙으로 향하는 길을 재촉하는 것 같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각국이 지출해야 할 돈을 ‘비용’으로만 보는 사업가적 시각을 버리고 인간다운 삶과 인류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기는 대범한 접근법이 필요한 때다.

유태영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