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에서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환경계획(UNEP) 등 유엔 산하 각종 기구를 한곳에 유치한 나라는 덴마크(코펜하겐), 스위스(제네바), 오스트리아(빈), 미국(뉴욕), 케냐(나이로비) 등에 불과하다. 아시아에는 한 곳도 없다. 유엔시티 중에는 특정 주제를 정한 뒤 관련 의제를 지속적으로 제시하며 ‘제네바=인권’과 같은 이미지를 형성한 곳도 있다.
용산은 평화를 위한 선조들의 열망과 한반도 분쟁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100년 전 3·1운동 당시 수많은 노동자·학생이 이곳에 모여 평화 시위를 전개했고, 해방 이후에는 약 70년간 미군 부대가 주둔했다. 21세기 들어서는 개발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2009년 ‘용산 참사’도 일어났다.
임 교수는 “현재 용산에 가득한 건 개발 욕망”이라며 “글로벌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공무원, 대기업 입사를 꿈꾸는 지금 세대와 달리 다음 세대 아이들이 인권, 민주, 평화, 생태 등을 꿈꿀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어울리는 유엔시티 테마로 ‘동아시아 평화’, ‘사이버테러 예방’, ‘블록체인’ 등을 제시했다. 한국은 빠르게 민주주의를 달성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동아시아 국가들에 전달하거나 ‘정보기술(IT) 강국’으로서 사이버 폭력 관련 의제를 제시하는 데 강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는 “제조업 일자리는 점점 더 기계가 대체할 테지만 이런 분야는 우리가 이슈를 선점하면 고용도 늘어난다”며 “환경, 글로벌 기업 문제 등 전 세계적인 문제를 다룰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에 특정 주제와 관련한 유엔시티 조성은 한국이 국력은 작아도 담론으로 앞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은 개별 국가가 아니라 유럽연합(EU) 차원에서 구글세 등을 논의하지만 그 외 지역은 각개전투 중이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만난 임채원 경희대 교수는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지만 세계사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며 “서울 용산에 유엔시티를 유치해 남북 평화에서 나아가 세계적인 평화 의제를 제시하자”고 제안했다. |
그는 문재인정부의 정책기조인 ‘혁신적 포용국가’의 기틀을 만든 일원으로서 현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장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정부의 남북관계 정책을 지지하지만 평화의 초점이 남북 관계에만 맞춰져 있는 점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다.
임 교수는 “올해 3·1운동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정부에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지만 세계사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며 “한국은 평화를 주도할 만한 자격이 있고 (한·일 관계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평화 담론을 주도하며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유엔시티 조성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