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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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옹성 같은 유치원 정문… 서울 시내 사립유치원 가보니

[스토리세계] ‘한유총’ 개학 연기 강행 첫날 / 유치원도 부모도 다양한 반응
국내 최대 사립유치원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주도로 4일부터 전국 사립유치원 무기한 개학 연기 투쟁이 시작됐다. 한유총 의도보다는 참가율이 낮은 가운데 서울 시내에서 만난 유치원 관계자들과 부모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일부 유치원은 철회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면서 무기한 개학 연기 카드를 이어갈 뜻을 내비쳤지만, 학부모와 아이를 생각해 태도를 바꾼 곳도 있었다. 돌봄 교실을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예상만큼 보육 대란은 크지 않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부와 유치원들을 향한 학부모 불안과 불신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4일 오전 서울 도봉구의 한 유치원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연합뉴스
◆‘무기한 개학 연기’ 유지…“한유총 강요 없었다”

서울 강동구 A유치원은 무기한 개학 연기 철회와 관련해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교사들은 바쁜 걸음으로 속속 출근했지만 특별히 동요하지 않은 듯 했다. 유치원 관계자는 “한유총 결정이 내려진 뒤, 학부모님들께 안내 연락을 드렸다”며 “자체 돌봄 교실을 운영하고 있어서 아이들 등원도 이미 마쳤다”고 말했다.

A유치원은 이날 학부모 간담회를 열어 의견을 들어본 뒤,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관계자는 “한유총과 정부 정책을 저울질한 뒤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선에 떠도는 ‘한유총의 개학 연기 동참 강요’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런 말은 들은 적 없다”고 못 박았다.

서울 도봉구의 한 유치원 입구에 서울북부교육지원청 장학사가 부착한 시정명령서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같은 구 B유치원은 오는 7일부터 학사일정을 시작하되, 무기한 개학 연기 방침에 따라 돌봄 교실만 운영할 계획이다. 유치원 관계자는 “비난 여론으로 교사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상황”이라며 “개학 연기 결정이 나왔을 때 학부모님들께 일일이 전화를 드려 사정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학부모 사이에서) 개학을 연기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대부분 우리 입장을 이해해주시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한유총에서 개학 연기가 결정되었으니 동참 여부를 공문 형식으로 물어왔다고 설명한 관계자는 “사립유치원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대부분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계획 모른다는 유치원…부모는 불안한 마음 뿐

동대문구 D유치원 근처는 등원 시간인 오전 10시부터 학부모 차량이 줄지어 서는 등 혼란이 적지 않았다. 부모들은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허겁지겁 회사로 나섰다. 이곳은 오늘과 내일 등하원 차량을 운행하지 않으며, 돌봄 서비스만 제공한다.

자녀를 유치원에 처음 보내는 고모(34)씨는 “주말에 교육청으로부터 입학이 연기될 수도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장모님께 아이를 맡겨야 하나 고민했다”며 “다행히 아침에 전화 해보니 (유치원에서) 와도 된다고 해서 늦게라도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유치원이 미리 알림을 보내지 않은 탓에 당황스러웠다면서 그는 “유치원이 교육부랑 얘기 중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부모는 “정식개학은 다음주라 차질은 없다고 들었다”며 “어쨌든 정상운영은 아니니 불안한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학부모는 “이런 식으로 가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보호자 입장에서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라며 “교육기관으로서 유치원 측이 사명감을 갖고 정부와 잘 협의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5일로 예정된 개학일을 7일로 연기한 마포구 C유치원은 이날 오전 교사들만 출근하고 있었다. 한 교사는 ‘향후 운영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어제(3일) 갑자기 개학 연기 방침이 정해졌다”며 “내부의 구체적인 방침을 듣지 못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개학 연기를 전격 취소한 서울 도봉구의 한 유치원.
나진희 기자
◆연기 전격 취소하고 원생 반겨…“학부모와 아이들 걱정이 이유”

도봉구 E유치원은 예정했던 무기한 입학 연기를 전격 취소했다. 이날 만난 학부모들은 유치원의 입학 연기 취소를 크게 반겼다.

오전 10시 등원에 맞춰 7세 아들 손을 잡고 나타난 신모(39)씨는 “개학이 미뤄진 줄 알고 걱정했는데 어제 (연기가) 취소됐다는 전화를 받고 아이를 데려왔다”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정말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유아 교육에 40년 이상 몸을 담았다고 밝힌 F원장은 이날 오전 교육청에 연락해 연기 취소 사실을 알렸다며 “맞벌이 부모님들도 많은 상황에 아이들이 걱정돼 차마 (입학 및 개학) 연기를 하지 못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유치원에 들어오는 원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사립유치원 대란’에 불안해하는 학부모들을 안심시켰다.

집단행동과 관련한 한유총의 연락을 받은 적 있냐는 질문에 원장은 “그런 것 없다”며 “우리 유치원은 예전부터 자율적으로 운영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훌륭하신 분들이 많은데도 대다수 원장이 나쁜 사람으로 몰리고 있다”며 “분위기가 (사립유치원에 부정적으로) 흘러 정말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구로구 G유치원 원장은 돌봄 교실을 문의하는 취재진에게 답변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인근 어린이집에서 만난 학부모는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녀서 이번 한유총 사태와는 무관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개학 연기는) 매우 부당한 행동”이라고 했다.

한편 정상 운영하는 유치원에 아이를 보냈다고 밝힌 마포구의 30대 주부는 “나처럼 그러지 못했을 엄마들을 생각하면 분노를 참을 수 없다”며 “저출산 위기 시대를 맞아 정부는 출산을 독려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에게 육아는 힘든 환경이다, 그런데 도움을 주기는 커녕∼”이라고 한유총은 물론이고 정부를 향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김동환·권구성·나진희·이동준·안승진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