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김학의 수사' 증거폐기 논란…경찰은 '부글부글'

경찰 "원칙대로 처리…악의적" / 조사단 "진상 규명 위한 과정…의도 없어" / 법조계에서도 발표 내용에 '갸웃'
“검사의 지휘에 따라 압수물을 처리하고 원칙대로 혐의와 무관한 증거들을 송치하지 않은 것인데 마치 경찰이 의도적으로 주요 증거를 대거 누락하고 부실·축소 수사를 한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한 진상조사단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국민적 의혹을 산 검찰의 과거사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하 대검 조사단)이 지난 4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검찰 송치과정에서 3만건 이상의 디지털 증거를 누락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힌 것을 놓고 경찰 내부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김 전 차관에 대한 성접대 의혹 사건은 2013년 3월 건설업자 윤중천씨 소유의 강원도 한 별장에서 고위층을 대상으로 한 성접대가 있었고 김 전 차관으로 지목된 남성이 등장하는 관련 동영상도 존재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불거졌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문제의 동영상을 입수하고 압수물 분석과 관련자 수사 등을 거쳐 김 전 차관을 문제의 고위층으로 특정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고, 이듬해 동영상 속 피해자임을 주장한 여성이 나타나 김 전 차관을 성폭력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또 무혐의 처분을 해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었다.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서슬퍼렇던 박근혜정권 초기에 실력자로 꼽히던 사람을 상대로 한 수사여서 정말 철저하게 수사한 뒤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인데 혐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들을 경찰이 누락했을리 있냐”며 “조사단이 검찰의 처리 과정을 파헤치는 대신 경찰은 부실·은폐 수사를 하고 검찰이 눈감아준 것처럼 물타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찰 “원칙대로 처리했는데, 조사단 자초지종도 안 듣고 경찰 잘못 큰 것처럼 언론에 자료 배포”

앞서 대검 조사단은 경찰이 김 전 차관 사건과 관련해 윤씨 등의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대한 포렌식을 통해 확보한 3만건 이상의 동영상 등 디지털 증거가 송치 누락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누락된 디지털 증거 복제본 보관 여부 △삭제·폐기했다면 그 일시 및 근거, 송치누락 경위 △복제본이 폐기되지 않았다면 조사단에 제공 가능한지 여부를 오는 13일까지 알려달라고 경찰청에 요청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조사단은 자료에서 경찰이 복구해놓고도 검찰에 넘기지 않은 디지털 증거의 주요 사례를 나열한 뒤,

“본건은 경찰이 김학의 동영상을 확보해 수사개시된 것이고, 기록상 확보된 진술에 의할 경우 별장 성접대 관련 추가 동영상이 존재할 개연성이 충분했다”며 “그런데도 경찰은 포렌식한 디지털 증거를 송치누락했고, 검찰은 이에 대한 추가송치를 요구하지도 않은 채 김학의 등에 대해 2회 혐의없음 처분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사단은 당시 검찰 수사팀이 이러한 송치누락 사정을 파악하고 수사상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는지도 함께 확인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5일 “압수물 처리는 검사 지휘 받아서 했고 그 근거가 수사보고서에 다 달려 있다”며 “디지털 증거의 경우 혐의와 관련된 것만 송치하도록 돼 있어 그렇게 했고 근거를 모두 수사기록에 남겼다”고 반박했다. 그는 “당시 판사가 발부해주는 압수수색 영장에도 ‘디지털 증거는 복제해서 압수하는 것이 원칙이고 분석한 뒤 혐의와 관련 없는 것은 즉시 폐기 삭제하라’고 적시돼 있다”며 “별장에서 압수한 윤중천 PC만 해도 대부분 자녀들이 사용하던 것이다. 사건과 무관한 윤씨 자녀들의 개인적이고 잡다한 파일을 송치하면 안 되는 거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단이 이런 설명을 사전에 듣지도 않고 경위를 알려달라는 공문을 보내면서 경찰이 엄청나게 잘못한 것처럼 언론에 흘리다니 어이가 없다. 악의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경찰 “조사단의 본분 잊지 말아야”, 경찰 말고도 조사단 발표 내용에 ‘갸웃’ 적잖아

경찰 측은 김 전 차관 사건의 경우 경찰이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갖고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것을 검찰이 무혐의로 처리하는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고, 합당한 조치였는지 여부를 규명하는 것이 조사단의 임무라는 점을 강조한다. 같은 맥락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예민한 시기에 조사단이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했다며 저의를 의심했다. 법조계에서도 당시 경찰이 김 전 차관 관련 사건의 증거들을 누락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경찰 책임을 부각시키는 듯한 조사단의 자료 내용에 의아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박근혜정권 초기에도 검경은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대립했던 데다 청와대 민정라인은 검찰 출신들이 장악하고 수사 대상도 검찰 실세였던 점을 감안, 경찰 내 최고 특수수사팀이 수사를 맡았고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팀의 처벌 의지도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난 뒤 경찰 내부에선 강하게 반발했고,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 이 사건을 자주 거론하기도 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경찰로선 (김 전 차관 처벌에 미온적인) 검찰의 반응을 예상해 혐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들은 어떻게든 모아 제출했을 것”이라며 “상식적으로 경찰이 어마어마한 증거들을 일부러 누락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조사단 “제대로 진상규명 하기 위한 과정, 의도 없어”

조사단 관계자는 “(디지털 증거가 대량으로) 송치과정에서 누락된 것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어서 자료를 낸 것이지 경찰 책임이 있다고 단정한 게 아니다”며 “경찰이 기초 수사를 맡고 수사(지휘) 책임은 검찰에 있기 때문에 디지털 증거가 송치 안 됐다고 하면 경찰만이 아니라 검찰 책임도 포함된다. 언론이 경찰 책임을 부각하는 쪽으로 보도한 면이 있으나 조사단은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수사권 조정 국면을 감안) 오해를 안 사기 위해 내부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자료를 낸 것이고 보도자료에도 검찰 (대상) 조사 부분을 적시했다”며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가) 잘못됐으면 최종적으로 검찰에 책임이 있는 만큼 제대로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조사단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조사단은 보도자료 말미에 “(김 전 차관 사건과 관련해 디지털 증거 송치 누락 등) 결국 이러한 부실수사 내지 축소·은폐수사 정황에 대한 규명은 검찰 수사팀의 과오를 확인하는 진상조사에 중요한 부분임을 감안해 조사단은 관련 조사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경찰의 책임 있는 협조를 당부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