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이상 '차기 주자' 히트 상품…유시민 빼면 정확한 비교에 차질
- 이민 가서 돌아오지 않는 이상 유시민, 조사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팔자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두 달여 만에 뜨겁게 재등장했다.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유 이사장은 지난 5일 발표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이낙연 국무총리와 함께 3강을 형성했다. 범진보 여권 지지층에선 1위 자리까지 꿰찼다.
그가 지난해 연말 "정치와 연을 끊었으니 차기 주자 여론조사에서 나를 빼 달라"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데 이어 새해 들어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공문까지 보내 읍소한 것을 무색케 한다.
왜 그렇게 됐을까. 여론조사기관은 왜 그의 요청을 뿌리치고 계속 대권 주자 후보군에 올려놓는 것일까.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전국 성인 20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2%p,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심위 홈페이지 참조)를 5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황 대표가 17.9%, 유 이사장이 13.2%, 이 총리가 11.5%로 3강을 형성했다. 범여권과 무당층에선 유 이사장이 18.8%의 지지를 받아 이 총리(16.6%)를 누르고 1위에 올랐다.
오마이뉴스 측은 유 이사장을 여론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이유에 대해 "본 조사를 위한 사전 개방형 조사(주관식 답변)에서 유 이사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치를 기록해 고심 끝에 본 조사에도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를 빼고 유력한 차기 주자를 묻는다면 신빙성이 떨어질 수 있어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 이사장이 여권뿐 아니라 정치권 인기스타라는 점은 올들어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지난 1월 초 MBC 조사 땐 전체 1위를 했다. 중앙일보 조사에선 범여권 기준으로 1위 이 총리와 오차범위 내에서 2위를 차지했다.
◆ 중앙선관위 "후보에 넣고 말고는 언론 및 조사기관이 알아서 할 일"
유 이사장은 범여권 뿌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맡은 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예사롭지 않자 취임식 날(2018년 10월 15일) "임명직 공무원이나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제 일생에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럼에도 정치인 선호도 조사 때마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자 지난해 12월 22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여론조사 대상에 유시민을 넣지 말라는 본인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라는 안내문을 (언론사에) 보내 줄 것을 요구할 생각이다"고 했다. 이후 1월 14일 여심위에 이러한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1월 25일 회의를 연 여심위는 "유 이사장 건의내용을 토의한 결과 이는 언론기관 및 여론조사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으로 판단, 해당 기관에 별도 통지를 하지 않기로 했다"며 그의 청을 뿌리쳤다.
◆ 1985년 항소이유서 이후 30여년 '전국구 스타'…10년전에도 박근혜와 차기 1·2위 다퉈
유 이사장이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 단골 후보가 된 데는 그가 이른바 ‘정치적 스테디셀러’(꾸준히 잘 팔리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유 이사장은 1985년 5월 27일 옥중에서 '항소 이유서'를 쓴 이후 학생 운동권을 넘어서 정치 사회적으로 전국구 스타가 됐다. 그의 항소 이유서는 판사들이 돌려볼 만큼 시대의 명문으로 유명했다.
청바지 차림의 국회의원 선서, 47살의 젊은 장관(2006년 제 44대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전국구 스타의 길을 꾸준히 걸었던 유 이사장은 2009년엔 '차기 주자'조사에서 당시 막강했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 양강을 형성할 정도로 체급이 커졌다.
그 때를 전후해 유 이사장은 전국구 스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 한명으로 몸집을 확실히 불렸다.
유 이사장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이름을 차기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빼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친노무현계 핵심이지만 민주당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 일정부분 주류 정치와 담을 쌓는 등 치에 회의를 느낄 무렵이었다.
유 이사장은 이듬해인 2013년 2월 19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2018년 6월엔 정의당 당적마저 없애 버렸다.
2012년 '나를 빼달라'를 외친 지 6년 만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2012년엔 소원대로 조사대상에서 제외됐지만 6년이 지난 지금은 아니라는 것.
현재로선 영구 이민을 간다면 모를까, 여론조사에서 그의 이름 석자가 빠질 가능성은 희박한 셈이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사진=연합뉴스· 리얼미터·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