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연기에 이어 ‘폐원’ 카드까지 거론하며 투쟁 강도를 높이려던 의지는 온데간데없고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한유총 지도부의 리더십이 큰 타격을 입은 데 이어 서울교육청의 설립허가 취소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검찰 수사 등 정부의 전방위 압력에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황입니다.
반면 한유총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온 교육부는 유치원 학부모 등 ‘이번 만큼은 아이들을 볼모로 한 한유총의 이기적 행태에 물러서면 안 된다’는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한유총은 참패할 만 했습니다. ‘투쟁 프레임’을 잘못 짠 탓이죠.
전국 최대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유총의 몰락은 기업형 등 대형 유치원을 중심으로 한 사립유치원들이 시대 흐름과 환경 변화를 읽지 못한 채 자유한국당의 지원사격에 기대 관성을 답습하려 한 것과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사실 사립유치원들 입장에서도 합리적으로 정부에 요구할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정부가 재정 한계와 여건 미비 등으로 감당하지 못했던 유아교육의 상당 부분을 사립유치원들이 떠안아왔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사립유치원이라고 해도 모두 잇속 채우기에 급급한 게 아니고 자비를 들여 힘겨운 여건에서도 유아교육에 힘쓴 곳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유치원마다 사정과 형편이 어떻든 간에 ‘내 재산을 들여 세운 유치원 운영을 통해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공통적일 겁니다.
이는 물론 정부가 그대로 들어주기 힘든 사안이긴 하나 사립유치원들이 자신들의 형편과 처지를 이해시키고 정부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할 수도 있었다는 방증입니다.
하지만 같은 얘기를 ‘시설 사용료를 달라’, ‘사립유치원은 자영업이다’, ‘학교가 아니고 치킨집과 같다’, ‘정부가 지원금 몇푼 주고 지나치게 간섭한다’ 는 식으로 떠들어 대면서 사유재산권 보장 프레임을 들고 나와 국민들의 화를 돋우었습니다. 한유총은 이 싸움에 ‘전통적 우군’인 자유한국당까지 끌어들였지만 국민 대다수가 사립유치원들을 싸잡아 비판하고 ‘한유총 응징’ 목소리를 내는데 제1 야당이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정부도 ‘골칫덩이’ 한유총을 꺾었다고 좋아할 때가 아닙니다. 사실 한유총이 더 꼴 사나운 짓을 해서 그렇지 국민 보기에 정부도 그닥 잘 한 게 없습니다. 오랫동안 사립유치원을 방치하다시피 했고, 누리과정 도입 후 에도 적지 않은 재정을 지원하면서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에는 둔감했으니까요.
국공립유치원보다 훨씬 많은 유치원생의 교육을 담당하는 사립유치원들이 자산현황이 어떤지, 유치원비 상한제는 교육의 질 제고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등 실태 조사나 관련 자료도 빈약합니다. 그러니 과거 사립유치원들이 무리한 요구사항을 내걸며 단체 행동을 할 때마다 정부는 우왕좌왕 끌려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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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사립유치원 개학연기 관련 현장실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그나마 이번에 목소리를 낸 학부모들과 달리 원장 눈치보느라 한마디도 못하는 사립유치원 교사들의 처우와 복지에 대해 누구도 관심두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공공성 강화방안의 하나로 사립유치원을 매입해 국공립 유치원으로 전환할 경우 교원 승계가 안 돼 사립유치원 교사는 실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취학 전 아이를 상대로 수업만 하는 게 아니고 양육과 보육을 함께 하는 유치원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유치원은 국공립과 사립유치원 교사 간 처우와 복지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육아정책연구소 박창현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엄격히 확립한 (유치원 운영) 기준을 바탕으로 사립유치원 지원 방안과 제대로 된 유아교육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참에 누리과정의 장단점도 따져서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관련 분야 실태 조사와 연구도 강화하고, 필요하면 이해 당사자와 전문가, 학부모도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새겨들었으면 합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e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