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흡연자’인 당신에게 바치는 꽁초 투기의 ‘심리학’

[스토리세계] 내 손의 꽁초, 과연 어디에 버릴 것인가?

‘뻐끔뻐끔’ 그리고 ‘휙∼’

 

환경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최근 20~50세 남녀 흡연자 701명을 대상으로 ‘담배꽁초 처리실태’를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7.2%(541명)가 길바닥에 꽁초를 한 번이라도 버려봤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단속반을 가동해 꽁초 무단 투기자에게 과태료 수만원을 부과하고 있지만 꽁초 투기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길거리 투기를 막는 휴대용 재떨이가 있어도 필요하지 않다거나 갖고 다니는 게 불편하다며 응답자의 77.5%(543명)가 사용하지 않았다. 

 

양재시민의숲 역 인근 주차장에 버려진 꽁초.

◆티끌 모아 태산?…꽁초 모아 ‘쓰레기장’

 

“이게 뭐야, 완전히 난장판이네!”

 

지난 11일 지하철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 역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운 A씨는 바닥에 흩어진 꽁초를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얼핏 봐도 수십개에 하수구와 화단에 널린 꽁초를 합하면 수백개는 넘어 보였다. 과태료만 수천만원은 족히 나올 듯 싶었다. 

 

취재차 둘러본 주차장 일대 곳곳이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꽁초는 기본에 누군가 버리고 간 테이크아웃 커피잔 여러 개도 발견됐다. 커피잔은 오래 전에 버려진 건지 형체를 알아볼기 힘들 정도로 훼손돼 있었다. 먹다 남긴 음료와 과자 봉지, 종이 상자, 담뱃갑을 포함한 온갖 쓰레기가 화단과 지하철 환풍구 같은 시설에 널려 있었다. 

 

지하철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 역 근처의 주차장. 버려진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다수 발견됐다.

주차장에서 만난 B씨는 “시민의 숲이 근처에 있는데 꽁초 투기라니 너무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온 C씨는 “오래 전부터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며 “쓰레기 투기자들에게 왜 그랬는지 묻고 싶다”고 쓴소리를 했다.

 

서초구청은 해당 주차장이 상습 쓰레기 투기 지역은 아니라면서 단속 인력의 한계상 민원이 들어오면 나가서 꽁초를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누군가 무심코 버린 꽁초에서 줄줄이 무단 투기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거리에 하천과 숲 공원이 있는데도 이러한 풍경이 빚어지는 것을 보면 여전히 시민의식이 부족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비슷한 곳이 전국에 얼마나 많을까?

 

서울지하철 2호선 교대역 인근의 한 빌딩에 조성된 화단. 원래 꽁초가 많이 버려지던 곳이었으나, 꽃을 심은 뒤 문제가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꽁초 버려지던 곳을 화단으로 바꿨더니…

 

‘지나는 사람마다 꽃들이 인사하고 있네요.’

 

‘서로가 보는 즐거움. 꽃을 사랑합시다.’

 

같은날, 서울지하철 2호선 교대역 인근 빌딩 화단의 알록달록한 꽃잎에 행인들 시선이 꽂혔다. 한 남성은 지나치다 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한 여성은 푯말의 문구를 나지막이 따라 읽기도 했다. 

 

이곳은 과거 담배 꽁초 투기 장소였지만, 빌딩 관리소가 꽃을 심은 뒤 이야기가 달라졌다. 흡연은 못막아도 꽃을 심은 덕분인지 꽁초가 눈에 띄게 사라졌다. 이날도 몇몇 흡연자가 있었지만 화단이 아닌 근처 쓰레기통에 꽁초를 버리고 자리를 떴다. 쓰레기통이 있어도 담배 피운 자리가 깨끗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꽃송이의 적잖은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빌딩 관계자는 “꽁초 무단 투기를 막으려 오래 전에 꽃을 심었다”고 말했다. 

 

화단과 옆에 놓인 상자 쓰레기통.

◆무조건 ‘하지마’가 아닌…저절로 따르게 하라

 

이처럼 상반된 현장 풍경을 두고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전자에선 동조심리가 작용했으며, 후자는 화단이 흡연자의 도덕성을 일깨웠다고 분석했다. 양재시민의숲 지하철역 주변의 경우 꽁초를 버린 사람들이 먼저 버린 사람들의 행동에 자신을 동화시켰다는 것이다. 깨진 채 오래 방치된 건물 유리창을 본 뒤, 자기가 돌을 던져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퍼지면서 마침내 무법 상태가 되는 ‘깨진 유리창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을 연상케 한다. 반대로 교대역 인근 화단 주변 흡연자들은 무단 투기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는 뜻이다.

 

곽 교수는 “담배꽁초 무단 투기는 다른 사람이 버렸으니 나도 괜찮겠다는 생각의 결과”라며 “깨끗한 장소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꽁초를 버리려다가도 ‘잘못된 행동’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금연스티커보다 화단 조성의 꽁초 투기 방지 확률이 높다면서 곽 교수는 “무조건 하지 마라는 지시보다 사람의 생각을 움직여 따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