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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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향방 또 ‘시계 제로’… 대혼돈의 영국

하원, 수정안 승인투표도 부결 / 1차 투표 때같이 반대표 압도적 / 안전장치도 강경파 만족 못시켜 / 메이 총리 리더십 또 커다란 상처/ 합의안 재수정·연기·국민투표 등 세가지 선택지중 하나 결정해야 / 코빈 “정부 손 떠나” 조기 총선 주장 / EU “실망스럽다… 해법은 英 손에 / 노 딜 대비해 준비 계속 해 나갈 것”

영국 정부와 유럽연합(EU)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최대 쟁점인 ‘백스톱’(안전장치) 조항을 수정해 만든 합의안이 12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에서 좌초했다. 영국은 17일 앞으로 다가온 탈퇴시한(3월29일)을 연장해 시간을 벌겠다는 전략으로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EU 측은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상당히 커졌다”고 평가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런던 의사당에서 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브렉시트 합의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런던=AP연합뉴스

BBC방송 등에 따르면 하원의원 633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표결에서 이번 합의안은 찬성 242표, 반대 391표로 부결됐다. 지난 1월 1차 합의안 투표 당시(230표 차)보다는 격차가 좁혀졌지만 반대 의견이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정부의 149표 차 패배는 영국 의회 역사상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이는 수정된 안전장치 조항도 집권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와 북아일랜드 보수정당 민주연합당(DUP)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안전장치는 영국이 EU를 탈퇴할 경우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EU 소속인 아일랜드 사이에 ‘강력한’ 국경이 생기면서 양측 간 이동·교역이 엄격해지는 문제 때문에 설계됐다. 영국과 EU는 관련 해법이 나올 때까지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에 잔류케 하는 방안을 마련했는데,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에 따라 테리사 메이 총리는 최근 EU와 재협상을 벌여 필요 시 안전장치 적용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따냈다.

 

하지만 제프리 콕스 영국 법무장관은 투표 직전 이와 관련해 “영국이 EU 동의 없이 안전장치를 철회할 수 있는 국제적 합법 수단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보수당 312명 중 75명, DUP 10명 전원이 반대표를 던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수당 내 EU 탈퇴파를 이끄는 제이콥 리스모그 의원은 “수정안에는 EU를 깔끔하게 떠난다는 약속이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부결 발표 뒤 “정부는 브렉시트 합의안이 제 손을 떠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조기총선을 주장했다.

 

두 번째 합의안마저 부결되며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메이 총리는 “이제 하원은 EU 탈퇴시한 연장, 제2 국민투표, 합의안 재수정 등 세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협상을 위해 EU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다시 갈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영국 정부는 먼저 13일 ‘노딜 브렉시트’ 여부를 하원에 묻고, 여기서 노딜이 부결되면 14일 탈퇴시한 연기 방안을 표결에 부칠 계획이다. 만에 하나 노딜이 현실화할 경우 일시적으로 농산품 등을 제외한 수입품 87%에 무관세를 적용하고,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간 통관 및 관세신고 절차는 면제한다는 복안도 내놨다.

 

그러나 EU가 탈퇴시한 연장 또는 재협상에 긍정적으로 화답할지는 미지수다. 유럽의회가 오는 5월23일 선거를 통해 7월 개원해야 하므로 탈퇴 연장시한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측 대변인은 이날 표결 결과가 “실망스럽다”며 “EU 입장에서는 합의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 지금의 교착을 풀 해법은 이제 런던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한 준비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안전장치 조항 수정 후 “이번이 (영국에 주어진) 두 번째 기회이며, 세 번째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