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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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만 지으면 말라죽어… 땅 파 보니 쓰레기만 한가득

토지주 "쓰레기 시에서 치워야"…화성시 "법률검토 중"

수도권매립지가 건립되기 전인 1990년 경기 화성시가 개인 땅을 임차해 쓰레기를 매립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이 땅을 매입했다가 쓰레기가 묻힌 사실을 알게 된 토지주는 시에 원상복구를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1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황계동 한 골재 매매업소.

굴착기 한 대가 땅을 파자 시꺼먼 기름때(오니)와 함께 각종 쓰레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쓰레기가 썩으면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주변 땅을 오염시킨 듯 땅속은 시꺼멓게 변해 있었다.

굴착기가 땅을 파는 2시간여동안 반쯤 썩은 비닐류와 플라스틱, 병, 신발, 의류 등 잡다한 쓰레기가 계속 나왔고, 무려 3.5m를 파 내려가자 그제야 쓰레기가 섞이지 않은 맨땅이 보였다.

토지주 김씨 제공

토지주 김모(50)씨는 화성시가 29년 전 쓰레기를 묻었다며 증거자료로 임대차 계약서 한 부를 내밀었다.

1990년 1월 당시 화성군 태안읍장은 당시 토지주 A씨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A씨의 땅 3천여㎡를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했다.

당시 토지 임대차계약서를 보면 태안읍은 1990년 1월 12일부터 연말까지, 평당(3.3㎡) 700원씩 총 65만5천900원을 주고 이 토지를 쓰레기 매립장으로 썼다.

쓰레기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를 방지할 차수 매트도 설치되지 않았다.

다만 계약서에는 "쓰레기 매입 완료와 동시에 60㎝ 이상 복토하여 농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복구할 의무를 진다"고만 돼 있다.

당시 환경 관련 법상 쓰레기 매립장은 3천300㎡ 이상이거나 쓰레기 적치량이 1만㎥ 이상이면 매립장 설치허가와 공공시설 입지승인 등 절차를 거치게 돼 있었으나 해당 토지는 면적이 불과 203㎡ 모자라 대상이 아니었다.

태안읍이 토지주와 계약을 맺고 헐값에 쓰레기를 처분한 것이다.

땅 주인이 한차례 바뀌고 나서 2013년 이 땅을 7억원가량 주고 매입한 김씨는 최근 들어 땅속에 쓰레기가 매립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김씨는 "농지에서 골재 매매상을 운영하는 것이 불법이어서 영업을 접든가 아니면 이곳에 농사를 지으려 했다"며 "한때 시로부터 불법 영업으로 적발돼 농업으로 전향했고, 밭에 쪽파를 심어봤지만 금방 말라 죽었던 적이 있어 다시 어쩔 수 없이 불법으로 영업을 재개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땅에 어떻게 농사를 지으란 건지 모르겠다. 골재 매매상은 영업을 더 안 해도 좋다"며 "전 재산을 주고 산 내 땅에 화성시가 묻은 쓰레기를 모두 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화성시 관계자는 "1994년 이전까진 읍면동에서 나온 쓰레기는 읍면동장이 알아서 자체 매립하는 식이었다. 이런 곳을 '비위생매립장'이라고 불렀다"며 "민원이 제기된 만큼 법률 검토를 거쳐 시에서 책임질 부분은 책임질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만 "당시 법령을 확인하고 있는데, 환경 관련 규정에 있어선 매립 후 흙을 덮어 복토했다면 불법은 아닌 상황"이라며 "지목이 농지인 곳에 쓰레기를 묻은 행위가 농지법 위반인지에 대해선 농업 담당 부서를 통해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