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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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수학 킬러문항=도쿄대 본고사…국가가 '수포자' 만든다

3∼4년 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영역에서 등장한 최고난도 문제(일명 ‘킬러 문항’) 서너 개가 수학 사교육비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들 킬러 문항은 일본 내 최고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도쿄대에서 150분 내에 6문제를 풀도록 하는 본고사 문제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한다. 당연히 국내에선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 도저히 풀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수능 수험생들은 킬러 문항들을 포함해 수학 30문제를 100분 안에 풀어야 하는 등 국가가 교육과정을 스스로 위반하면서 ‘수포자’(수학 포기자)를 양산하고, 수학 사교육 시장의 선행학습 열풍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킬러 문항 수포자 폐해 양산···수학 가형 30번 문제, EBS 강사도 푸는 데 20분 걸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은 18일 “수학 사교육비 증가의 주범은 수능 수학에서 3∼4년 전부터 등장한 서너 개의 킬러문항이며, 이는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 무조건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걱세는 “소위 킬러문항으로 불리는 (수능) 21, 22, 29, 30번 문항은 대부분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는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학습노동을 강요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수포자로 만드는 폐해를 양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지난해(2019학년도) 수능 수학 가형 30번 문제에 대한 교육과정 근거와 관련,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삼각함수를 활용해 간단한 문제를 풀 수 있다”라고 했다. 평가원은 ‘교수·학습 상의 유의점’에 대해서도 “삼각함수의 활용에서는 주어진 구간 안에서 해를 구하는 간단한 방정식과 부등식을 다룬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작 30번 문제는 주어진 구간이 없어 무한히 많은 해를 구해야 하는 문제로 교육과정의 수준을 벗어났다는 게 사걱세의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평가원은 30번 문항을 푸는 데 필요한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3개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이 문제를 풀려면 고교 교육과정에서 각각 배운 15개 정도의 성취기준을 통합해서 풀어야만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문제를 꼬아 놓으니 EBS 수능 강사도 문제를 푸는데 20분 이상이 걸리고, EBS 공식 문제 해설서에도 3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풀이가 되어 있다. 현장 교사들은 최상위권 학생들이 실수하지 않고 풀 때 아무리 짧아도 15분 이상 걸리는 문제이며, 다단계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특성 상 한 단계에서 실수하거나 막히면 오답을 내거나 풀이 시간이 30∼40분이 걸린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마저 최상위권 학생에게만 해당되며, 나머지 학생들은 손도 댈 수 없는 문제라는 게 중론이다. 

 

사걱세 측은 “이러한 수능 출제 경향은 수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에 대한 이해보다 문제풀이 방법과 정확하게 푸는 연습, 고난도 문항에 대한 반복적인 연습을 강조해, 결국 개념은 없고 풀이 방법만 남는 학습 노동 강요로 대부분 학생들을 수포자로 만들고 있다”며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원, 과외, 인터넷 강의를 통해 학습해야 킬러문항을 풀 수 있다는 불안과 사교육비 부담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악명높은 도쿄대 본고사 수학 능가하는 수능 수학 킬러문항

 

사걱세 측은 수능 30번 문제와 비슷한 기출문제는 어렵다고 악명 높은 일본 도쿄대 본고사 문제 정도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풀이에 주어진 시간을 감안하면 수능 킬러문항이 더 악명높다고 볼 수 있다. 도쿄대 본고사 수학 문제는 150분에 6문제를 푸는 거라 문제당 평균 25분이 주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100분에 30문제를 푸는 수능 수학은 문제당 풀이 시간이 3분 남짓이다. 따라서 교육계에선 3∼4개의 킬러문항을 풀려면 수험생들은 나머지 26∼27개의 문제를 30분 이내에 풀어야 한다고 본다. 

 

서너 개의 킬러문항을 풀기 위해 최소 60∼70분을 확보하려면 나머지 문제들은 1분에 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걱세 측은 “킬러 문항의 존재는 그 문제 자체를 풀기 위한 지옥 같은 훈련만이 아니라, 학생을 수학 문제풀이 기계로 만들고 수학 교육 전반을 피폐하게 만드는 주범”이라며 “킬러 문항은 학생의 수학 사고 능력 발달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킬러 문항 출제 금지를 촉구했다. 

 

사걱세는 또 “교육비를 경감하려면 사교육비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수학 사교육비 비중을 줄여야 한다”며 “누구도 정상적으로 풀 수 없어 사교육으로 내몰고 있는 킬러문항 출제는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이어 “아울러 수능 수학 시험범위에서 3학년 2학기 한 과목이라도 제외한다면 중학교때부터 수학 선행학습을 위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