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갑작스러운 치통으로 며칠을 끙끙 앓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됐을 때 결국 치과에 갔다. 의사는 내게 “위쪽 맨 뒤 어금니가 많이 상해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로만 듣던 신경치료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휴대전화로 ‘신경치료 2회차도 많이 아픈가요’를 인터넷 검색하던 중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신경치료가 신경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신경을 ‘제거’하는 것이란 사실을. 게다가 신경을 제거하면 치아가 수명이 짧아져서 오래 못 쓴다는 글까지 보고 나니, 이것은 결국 ‘치아신경의 사망’이었단 생각에 몹시 우울해졌다.
2회차 치료를 받으러 다시 치과에 간 날, 나는 “신경치료가 신경을 죽이는 건지 몰랐다”고 슬쩍 말을 꺼냈다. 그러자 치과에서는 내게 “환자 분이 처음이어서 몰랐나보네요”라고 답했다. ‘사전 설명을 해줬으면 좋지 않았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 ‘그냥 몰랐던 내가 죄다’, 그렇게 결론 내렸다. 이 땅 어딘가에 나처럼 신경 ‘치료’란 이름에 속고 있었던 사람은 정녕 아무도 없는 것인가 생각하면서, 이제는 모든 신경이 제거돼 버린 ‘위쪽 맨 뒤 어금니’를 생각하면서, 나는 지금도 가끔 우울해한다.
‘신경(을 제거하는 치아) 치료’란 이름처럼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또 다른 대표적 용어가 ‘미세먼지’라고 생각한다. 청소를 안 했을 때 방 모서리에서 발견되는 덩어리도 먼지고, 1군 발암물질도 똑같은 먼지라 부르고 있다보니 나 같은 환경문외한으로서는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게다가 미세하다고까지 하니 얼핏 생각해선 경미한 먼지 같은 착각까지 들 때도 있어서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비트겐슈타인)”라는 말처럼, 미세먼지란 용어가 지금도 누군가에겐 그 심각성을 간과하게 만들고 있을 수 있다.
국회는 앞서 지난 13일 본회의에서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의 정의에 포함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 등 미세먼지 관련 법안 8건을 의결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함과 우려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다소 늦은 감이 있고, 근본적인 미세먼지 대책은 여전히 오리무중 상태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정부와 여야가 앞다퉈 미세먼지 해결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미세먼지의 공식 용어를 변경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해보면 어떨까. 실제 청와대나 환경부 홈페이지에는 미세먼지란 용어를 ‘발암먼지’ ‘중금속덩어리’ ‘독성분진’ 등으로 이름을 바꾸자는 민원 글이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다.
흡연의 위험을 알려주기 위해 담뱃갑 표지에 경고 그림과 문구를 표기하는 것처럼 미세먼지의 위험을 좀더 잘 표현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마련해 달라는 국민들의 요청이다. 미세먼지란 이름은 그것이 지닌 실상만큼 위협적이지 않다. 신경치료를 받은 치아는 나중에 임플란트라도 할 수 있지만, 미세먼지로 망가져버리는 몸은 대체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장혜진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