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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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 vs “법 안정성”…‘김학의’로 불붙은 공소시효 논란

일부 혐의 시효문제로 수사 난항 / “공소시효 늘려야” 여론 높아져 / “수사 인력 한계… 현안 처리 중요” / ‘정치적 도구화’ 우려 목소리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과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놓고 일각에서 회의론이 일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공소시효’ 때문이다. 이번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재수사 결정을 계기로 법조계·학계에서 공소시효 제도를 둘러싼 논의에 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소시효를 자꾸 흔들면 안 된다는 의견과 변화한 시대 흐름 등을 반영해야 한다는 반론이 팽팽하다.

 

공소시효 제도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범죄 사실에 대한 국가의 형벌권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설령 범죄를 저질렀어도 수사 및 기소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2015년 7월 개정된 형사소송법(일명 ‘태완이법’)에 따라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폐지됐다. 아울러 13세 미만 미성년자나 장애인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공소시효는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그런데 지난 25일 과거사위가 김 전 차관 등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권고한 것을 계기로 공소시효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부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돼 재수사 자체가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자 “공소시효를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공소시효를 둘러싼 법조계와 학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법무법인 우리 현경대 대표변호사는 “법치주의의 핵심은 법적 안정성이고 이를 위해 만든 것이 공소시효인 만큼 자꾸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 변호사는 “공소시효는 공동체의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개별 사건을 계기로 공소시효를 건드리려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중요한 것은 수사 및 기소 기관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한정된 수사 인력이 과거사에 집중할 경우 국민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법인 라온 김윤호 대표변호사는 “수사 인력에 한계가 있어 현안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서 공소시효가 더 늘어나 과거사에 자원이 집중되면 피해는 국민 몫”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의 흉악도와 시대의 변화,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공소시효를 다시 정리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현행 형량 중심 공소시효를 범죄의 종류를 중심으로 정리하는 한편 국민 법감정도 일정 부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과거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기 전에 만들어진 공소시효는 지금과 잘 안 맞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형사사법체계를 이루는 공소시효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낸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공소시효를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해외보다 활발한 배경에는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가 있다”며 “보다 신중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