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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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기초연금 올랐지만…수급자들 폐지줍기에 내몰린 이유는?

[스토리세계] 하위 70% 기초연금은 올랐지만 수급자 소득은 그대로

“폐지 줍는 건 빈곤 노인들끼리 경쟁이야. 늦게 가면 그마저도 없어···”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기초수급자 박모(75)씨. 5년째 폐지를 줍고 있다. 허리가 좋지 않은 박씨는 힘겹지만 약값과 식비를 벌기 위해 무거운 수레를 끌고 거리에 나선다. 박씨는 25일 기자와 만나 “정부에서 생계보조금이 나오는데 다음달 나오는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따져서 다시 빼앗아가 사실상 그 돈으론 약값, 밥값을 마련하기 빠듯하다”며 “일을 해 ‘소득’이 잡히면 그만큼 또 빼앗아가기 때문에 현금으로 소액이라도 주는 고물상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인의 날을 하루앞둔 1일 종로구 종묘공원을 찾은 노인들이 휴식을 하고 있다. /이제원기자

◆ 기초연금 올랐지만 수급자 연금은 제자리걸음

 

다음달부터 소득 하위 70%의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오른다. 기초연금 상향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생활물가 상승으로 힘겨워하는 노인층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자는 취지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40만명의 노인들은 되레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기초연금이 올랐지만 기초수급자에게 지급하는 생계급여에서 그만큼 깎여 실제 소득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잘사는 노인만 배불리는 정책이라며 정부가 빈곤노인계층을 외면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생계급여에서 기초연금이 제외되는 이유는 소득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올해 1인 기구기준 기초생계비는 52만원 수준인데 국민기초생활보장제의 ‘보충성 원리’에 따라 소득이 생기면 그만큼 생계급여가 줄어들게 된다. 결국 기존 소득에 추가로 기초연금을 받는 하위 70% 노인에 비해 기초수급자의 수입은 기초생계비 수준에 머물러 있어 노인 소득분위별 격차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결국 노인들은 소득이 잡히지 않는 폐지줍기 등에 내몰리고 있다. 약값이나 병원비, 생활비 등을 간신히 대고 있기 때문이다. 폐지노인복지시민연대 봉주헌 대표는 “폐지나 공병, 플라스틱을 주우며 (노인들이) 가난을 이겨내고 있다”며 “기초연금을 줬다 뺏는 정책이 공정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빈곤노인기초연금연대’ 소속 기초수급 노인 100여명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 모여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 “기초연금 줬다 뺏지 말아달라” 수년간 외침에도 기초수급노인은 여전히 외면

 

기초연금과 기초수급자의 생계급여가 중복되지 않는 문제는 수차례 제기돼 왔다.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총선 공약집에서 “최빈곤층 어르신 40만명에게 실질적인 기초연금 혜택을 드리겠다”며 최빈곤층인 기초수급자 노인이 기초연금 혜택에서 제외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지난해 말 기초수급노인에게 월 10만원의 생계비를 추가로 지급해 ‘줬다 뺏는 기초연금’의 문제를 부분적으로 개선하려 했지만 올해 국회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아 무산됐다. 기초수급노인은 현재 40만여명으로 추가 생계비를 지원하려면 4102억원의 복지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 

기초수급노인들은 반발하고 있다. 2017년에는 기초수급노인 99명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고 2014년부터 6차례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될 일인데 5년째 기초수급노인들은 외면받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포용적 복지를 선언한 만큼 노인들의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