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임대료 천정부지 ‘핫한 경리단길 상권’…유명세 쫓다 끝없는 추락 [김기자의 현장+]

높은 임대료·권리금 내고 창업…손실 감수한 채 빈손으로 떠나 / 권리금 ‘제로 시대’ / 이태원·경리단길 일대 쇠락 / ‘창업공식, 목 장사 시대 끝’ / 발길 뚝 / 텅 빈 가게…유리창 넘어 대부업체 전단지만

“평일에도 북적이던 동네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요? 목 좋은 곳이면 권리금 1~2억은 있어야 들어올 수 있었어요. 지금은 장사는 집보다 문 닫은 집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사람들로 북적일 때 상가 팔고 떠난 사람만 돈 벌었어요.”

 

지난 25일에 찾은 경리단길. 비교적 맑은 날씨였지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쇠락의 길로 걷는 이태원과 경리단길. 불과 1~2년 전만 해도 경리단길은 수많은 인파가 발 디딜 틈도 없이 성황을 이뤘다. 경리단길은 서울의 대표적인 젊음의 거리로 자리를 잡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변했다.

 

경리단 길을 거닐다 보면 ‘임대’라는 푯말을 쉽게 볼 수 있다. 이태원·경리단길의 상권이 쇠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젊음과 예술의 거리, 독특한 상권으로 고객의 발길을 모아 한때 번성했던 골목이 예전에 비해 180도로 달라졌다.

 

과거 경리단길은 SNS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자주 소개되면서 주야를 막론하고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가게마다 사람들로 북적였고, 새벽까지 문전성시를 이뤘다. 경리단길에서 가게를 얻으려면 웃돈을 들고 줄을 서야 했다.

 

​문을 닫은 가게 마다 '임대'를 알리는 종이가 붙어있다.

 

◆ 경리단길 자화상

 

한결같이 잘 나갈 것만 같던 경리단길 상권이 무너지게 된 계기는 뭘까? 다양한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대표적인 원인은 높은 임대료를 지적한다.

 

경리단길은 입지적 조건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협소한 골목길, 부족한 주차장 등 여건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이 거리로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는 개성과 창의적인 다양한 종류의 점포가 형성되고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임대료가 큰 몫을 했다.

 

같은 역세권에도 필연적으로 지나쳐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가기 쉽지 않은 길이 있다. 경리단길이 후자에 속하고 있다. 경리단길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으로 점차 사라지면서 빈 가게가 점차 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찾지 않는 삭막한 길로 변해 가고 있다.

 

이태원역 인근 공인중개사 한 관계자는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형성돼 경리단길까지 상권이 퍼져 나갔다”며 “줄어든 유동 인구에 상권이 죽자 경리단길 이태원 해방촌 순으로 폐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리단길애는 문을 닫은 가게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 유리문에 붙은 ‘임대’ 글귀 넘어…깨진 조명기구·각종 입간판만 쌓여

 

지난 25일 찾은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맑은 날씨지만, 경리단 길은 한산했다. 한 집 건너 한집 꼴로 ‘임대’ 푯말이 붙은 듯했다. 문을 연 상점보다 문을 닫은 상점이 더 많아 보였다. 월요일인 탓도 있지만, 드문드문 관광객만 눈에 띄었다. 골목길에는 사람보다 공사 차량만 분주하게 드나들고 있었다.

 

텅 빈 가게 유리창마다 ‘임대’라는 빨간 글자가 붙어있었다. 깨진 조명기구·각종 거리 입간판·입구마다 ‘목돈이 필요하신 분, 푼돈 갚으세요’, ‘사업자 전문대출’ 같은 문구가 담긴 각종 전단지가 쓰레기처럼 방치돼 흉물처럼 변하고 있었다.

 

이태원 상권은 역세권 입지에서 떨어진 경리단길부터 시작해 이태원, 해방촌 일대로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다. 그나마 해방촌 상권은 유지 되는 실정이다. 하지만 해방촌 상권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 상태다.

 

한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오르던 임대료 외에 1~2억까지 부르던 권리금이 기본이던 곳이 이젠 권리금 ‘제로 시대’가 됐다. 공실률은 높아져 가고, 들어오겠다는 세입자는 찾아볼 수 없다. 자영업자 수 자체가 줄어들다 보니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건물주들도 많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이태원 상권의 중대형상가 공실률은 22%로 전국 상가 공실률(10.8%)의 두배로 나타났다. 서울 청담동(11.2%), 동대문(14.6%)보다 높다.

 

이태원역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3~4년 전까지만 해도 임대료가 70~80만원 하던 가게가 250~300만원까지 올랐다”며 “상권이 무너진 상태에서 누가 들어오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앞으로 이런 경기는 계속 갈 수밖에 없다. 아직도 임대료가 그대로 받는 가게도 있고, 건물은 매매도 쉽지 않은 상태가 됐다”고 했다.

 

문을 닫은 한 가게는 '내부수리중'이라는 푯말이 유리창에 붙어있다.

 

◆ ‘빈 상가 늘고, 임대료는 내리고’

 

지난달 1월 30일 한국감정원의 따르면 전국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임대시장 동향 분석 결과 지난해 중대형상가의 공실률이 10.8%, 소규모 상가는 5.3%로 연초대비 각각 0.4%포인트, 0.6%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서울의 공실률은 중대형상가 7.0%, 소규모 상가 2.4%로 2018년 초에 비해 소폭 감소했으나 지방의 공실이 증가했다. 상가 임대료도 2018년도 대비해 내려갔다. 지역 산업경기 위축, 자영업 폐업 등이 상가 임대차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중대형상가의 임대료는 전국 평균 ㎡당 2만9000원으로 전년 대비 0.2% 하락했고, 소규모 상가는 2만800원으로 0.8% 떨어졌다. 집합상가도 2만8500원으로 전년 대비 0.3% 내렸다. 서울의 상가 임대료는 유형별로 전년 대비 0.2∼0.8% 하락했다.

 

조선안 부동산 전문가는 “예술과 낭만 그리고 젊음에 관대하지 못한 배금주의가 낳은 결과”라며 “임대료를 과다하게 올림으로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버린 꼴이 됐다. 공실이 되면 다시 임대료를 하향조정 나서겠지만, 한번 죽은 상권이 되살리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