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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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망신”… 브렉시트 혼란에 英 국민들 뿔났다

하원, 메이 합의안 세 번째로 부결 / 합의점 찾기 요원… 국민 분노 극에 / CNN “누구도 책임 안지려한다” / NYT “희망은 한 점 공유 힘들어” / 런던 수천명 브렉시트 찬반 집회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시위 참가자들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를 묘사한 인형의 코가 영국 경제를 상징하는 인형을 찌르는 조형물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통과된 후 2년 10개월, 영국 사회의 인내심이 극한에 다다르고 있다. 어떤 타협점도 찾아내지 못한 채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가 극심하다. 외신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 ‘엉망진창’, ‘국가적 망신’ 등의 수식어로 국민들의 절망감을 대변하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브렉시트 탈퇴일이었던 지난 29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은 테리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세 번째로 부결시켰다. 그러나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는 더욱 강경하게 반대하는 터라 EU의 브렉시트 잠정 연기 결정을 받아냈다. 이에 따른 새로운 브렉시트 시한은 오는 12일이다. 메이 총리는 이제 3전 4기의 심정으로 네 번째 승인투표를 준비한다.

 

답답한 점은 이전에도 지금도 합의점 찾기가 요원해 보인다는 것이다. CNN은 30일 “현재 확실하고 유일한 사실은 아무도 책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며, 설상가상으로 누구도 책임질 자리에 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27일 의회 주도의 ‘의향 투표’에서도 8개 제안이 모두 과반 지지를 받지 못하자 “공개적이고 국가적인 망신을 빼면 의회가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CNN은 지적했다.

2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하원의 ''유럽연합(EU) 탈퇴협정을 승인해 5월 22일 EU를 떠난다''는 정부 결의안에 대한 표결에 앞서테리사 메이 총리(가운데)가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는 “정부가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해주지 못하고 있으며, 누구도 만족하거나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NYT는 “일련의 브렉시트 사태는 영국을 ‘전쟁 중인 부족들(warring tribes)’처럼 갈라놓았고, 장밋빛 미래라곤 한 점도 공유하기 힘든 지경이 됐다”고 전했다.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을 세번째로 부결시킨 직후 지난 주말 런던에서는 ‘두번째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이들과 “탈퇴는 탈퇴”라고 외치는 브렉시트 지지자들 수천명이 뒤섞여 집회를 했다. 이 때문에 영국과 유럽대륙을 잇는 특급열차인 유로스타 운행이 12시간 넘게 중단됐다. 30일 영국교통경찰(BTP)는 전날 오후 7시쯤 세인트 판크라스 역사 지붕 위에 잉글랜드 국기를 두른 남성이 무단침입해 올라가 밤을 새웠고, 이날 오전 7시쯤 체포됐다고 밝혔다.

 

한편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이날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딜 브렉시트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볼턴 보좌관은 “영국이 EU를 떠나는 것을 우려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때는 미국으로 향하면 된다”며 “우리는 EU에서 독립한 영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과의 무역협정을 매우 갈망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2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하원에서 ''유럽연합(EU) 탈퇴협정을 승인해 5월 22일 EU를 떠난다''는 정부 결의안에 대한 표결에 앞서 테리사 메이 총리가 서서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시방편 연기를 거쳐 오는 12일 새로운 브렉시트가 예정된 가운데 영국 하원은 1일 또다시 의향투표를 실시한다. 하지만 직전 의향투표에서 단 한 개의 안도 과반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만큼 새롭게 투표를 한다고 해답을 찾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