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름값이 오를 때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내릴 때는 굼벵이 같더니, 올릴 때는 번개 같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곤 한다.
국제유가 상승 속도에 비해 국내 기름값은 더 빨리 오르지만, 국제유가가 떨어질 때는 기름값이 천천히 내려간다는 것이다. 국제유가 변동 추이가 기름값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데 이런 구조하에서 정유사와 주유소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국내 기름값은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최근 6주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3일 주유소 종합정보앱 오일나우가 발표한 전국 유가동향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값은 1398원으로 2개월 전보다 155원 상승했다. 오일나우 관계자는 “국내유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분기 동안 32% 상승한 국제유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이처럼 국제유가가 상승할 때는 기름값에 반영이 잘되지만, 국제유가가 급락할 때는 ‘기름값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고 의문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는 유가가 상승해서 기름값을 올릴 때나 그 반대의 상황에서 기름값을 내릴 때나 2∼3주의 시간이 걸린다. 정유사가 원유를 수입하는 시점에서 정제유를 주유소에 공급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가 폭락하더라도 바로 기름값에 적용되지 않는다.
정유사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국제유가가 오늘 10달러 떨어지면 내일 주유소 판매가가 100원 내려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유사 공급가가 최종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여러 단계에 걸쳐 있는 유통과정이 있기 때문에 통상 2∼3주가량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유가가 하락했는데도 기름값은 그만큼 내려가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탓도 있다. 국내 휘발유 가격 중 유류세 비중은 약 58.5% 정도다. 이 세금은 유류세라는 이름으로 교통에너지 환경세·교육세·지방주행세 등으로 구성되며 정액제다. 정액 분이 크다 보니 제품 가격이 내려갈수록 유류세 비중이 커지는 구조다. 국제 제품가격 하락이 크더라도 국내 제품가격에 체감이 적은 이유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서민 물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시적으로 적용한 유류세 15% 인하조치는 오는 5월6일 종료된다. 그러면 소비자는 기름값이 유가 인상 수준보다 더 올랐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사실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기름값 인상·인하폭은 일선 주유소에서 책정하는 기름값에 영향을 받는다. 일부 정유사 직영주유소를 제외한 자영주유소의 경우에는 개별 주유소의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로 가격을 달리 정할 수 있다. 1997년 석유산업 자유화 정책에 각 주유소는 기름값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 인하분을 잘 반영하는 주유소가 있는 반면, 국제유가 인하분을 잘 반영하지 않다가 인상 시에는 기름값을 올려 버리는 주유소도 있는 것이다.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의 한 관계자는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는 일부 주유소의 경우 주유소 가격을 내리는 데 소극적인 반면, 국제유가 상승 등 인상 요인이 있으면 가격을 올리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부분이 전체 주유소 판매가의 평균을 올리는 요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주유소협회 측은 “마진을 적게 남기더라도 많이 판매하는 박리다매 전략을 쓰는 곳도 있고, 가격 경쟁 대신 마진을 높여 수익을 내는 전략을 택하는 것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