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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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마시면 정말 퀸 보헤미안 랩소디가 들릴까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샤토 몽페라 

전설적인 록 그룹 퀸의 역작 ‘보헤미안 랩소디’. 최근 개봉한 영화 덕분에 이 곡을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죠. 몇해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일본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의 작가인 아기 다다시는 주인공을 빌어 이렇게 말합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들린다고. 이 와인은 프랑스 샤토 몽페라 루즈(Chateau Mont Perat Rouge)로 과일향이 풍부한 메를로를 위주로 남성적인 카베르네 소비뇽과 카베르네 프랑을 섞어서 만드는 보르도(Bordeaux) AOC 등급 와인입니다. 프랑스 와인에 ‘Bordeaux’라고 적혀 있다면 레지오날급 와인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산지 보르도의 여러마을에서 생산되는 포도를 섞어서 만든 와인입니다. 프랑스 와인은 보르도에서도 구체적인 마을 이름인 메독, 오메독, 생테스테프, 생테밀리옹 등이 표기될 수록 고급 와인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보르도라고만 적혀있다면 대체로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와인이죠. 이 와인을 마시면 정말 작가의 말대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막 들릴까요.

 

바바 스트라디바리오

얼마전 기자가 직접 다녀온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바바(BAVA)는 와인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풍부한 바닐라향과 농축된 과일향이 어우러지는 바르바레스코는 첼로에, 10년이상 장기숙성될수록 잠재력 들어나는 스트라디바리오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Bava Stradivario Barbera d’Asti Superior)는 ‘천상의 악기’로 유명한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오에, 묵직한 바롤로 스카로네(Balrolo Scarrone)는 콘트라베이스로 표현해 와인의 레이블에도 악기를 함께 담습니다. 

 

이처럼 와인이 주는 느낌들은 악기, 그림, 사람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곤 합니다. 물론 샤토 몽페라 루즈를 마시면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들린다는 것은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의 결과물입니다. 최근 기자는 마트에서 과거 6만원대에 판매하던 샤토 몽페라 루즈가 2만원대까지 떨어진 가격에 판매하길래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었습니다. 2015년산이었는데 오래전 맛있게 마셨던 추억을 떠올리며 큰 기대를 하고 마셨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는 커녕 너무도 평범할 정도로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아 실망만 했지요. 와인 경험이 풍부해지면 입맛이 바뀌었거나 와인 상태가 좋지 않았을 수 도 있지만 가격이 떨어진 만큼 맛도 떨어진 것같아 좀 씁쓸했답니다. 상태가 좋은 해의 빈티지를 구입해 다시 마셔 볼 예정입니다.

 

한국을 찾은 케이 빈트너스 창립자 찰스 스미스가 두 손으로 록 스피릿을 표시하고 있다

얼마전 기자는 엄청나게 ‘튀는’ 와이너리 오너를 만났습니다. 첫눈에 “전인권이네”라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은발이라할까 백발이라할까 번개 내지는 폭탄을 맞은 것처럼 잔뜩 부풀어 오른 퍼머 머리 스타일로 등장한 그는 미국 컬트와인 케이 빈트너스(K Vintners)를 만든 찰스 스미스(Charles Smith)랍니다. 외모에서 뿜어내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보자마다 두 손으로 ‘록 스피릿’을 표현하는데 아니나다를까 전직 록밴드 출신이라는 군요.  

 

미국 와인의 심장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그는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와인을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웨일즈 출신의 어머니와 프랑스 출신 아버지 밑에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전 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키웠고 결국 1989년에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져 그녀의 고향이 덴마크로 이주합니다. 그가 할줄 아는 일은 와인 관련 일이었지만 언어 문제로 취업이 어렵자 우여곡절 끝에 록밴드 매니저로 취업해 콘서트 투어를 기획하다 록밴드도 결성하게 됩니다. 덴마크에서 유명한 인디록 듀오 ‘Ravonettes’와 함께 많은 공연을 했다고 하네요. 

 

케이 빈트너스 찰스 스미스

록에 빠져 10년이란 세월을 보냈지만 와인을 향한 열정은 더욱 커졌갔다고 해요. 결국 1999년 미국으로 돌아와 시애틀에 와인샵을 열게됩니다. 고급와인 생산지로 명성이 높은 워싱턴주의 왈라 왈라 밸리(Walla Walla Valley)를 여행하던 그는 프랑스인 와인 메이커를 만난 뒤 영감을 받아 프랑스 론 스타일의 우아한 시라 와인을 만들어겠다는 결심을 하고 아예 이곳으로 이주해 독학으로 본격적인 양조에 돌입합니다. 그의 첫 작품은 2001년 탄생한 케이 시라 1999빈티지인데 그동안 미국 와인에서 보지 못한 스타일과 뛰어난 퀄러티로 비상한 주목을 받게됩니다. 2014년에 저명한 평론지 와인 앤수지애스트(Wine Enthusiast) 올해의 와인 메이커 선정됩니다. 죽기 전에 마셔야 하는 1001가지 와인에 케이 밀브란트 시라(K Milbrandt Syrah)가 선정됐으며 로열 시티 시라(Royal City Syrah)는 와인 앤수지애스트 100점, 로버트 파커 포인트 99점 받으면서 컬트 와인의 반열에 오릅니다.

 

케이 빈트너스 와인

그렇다면 전직 록커가 만든 와인은 어떤 맛일까요. 한모금 마시면 그의 외모만큼이나 정열적인 록 사운드가 막 들릴까요. 물론 음악은 들리지 않지만 그의 와인들을 시음하고 제가 내린 결론은 ‘날것’입니다. 와인을 예쁘게 하려면 어떻게해야할까요. 바로 ‘화장’입니다. 여러거지 양조 기법이 있는데 젖산발효(말로라틱 퍼먼테이션)를 하면 뾰족한 산도가 둥글둥글해집니다. 자연효모를 싹 죽이고 대신 연구소에서 배양한 인공효모를 사용하거나 병입전에 필터링을 통해 완벽하게 걸러내면 원하는 스타일로 매끈하게 와인을 만들수 있답니다. 여기에 새오크 숙성을 통해 과하게 나무향을 입히면 풀메이크업이 완성되죠. 

 

하지만 스미스는 이런 것들을 배제했더군요. 산도가 날카로운 소비뇽블랑은 젖산발효를 하지 않고 카베르네 소비뇽은 야생효모를 사용하고 필터링을 하지 않습니다. 샤르도네는 새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아 과일 본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와인을 마실때 가장 신경써야할 것은은 무엇인지 그에 물어봤습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와인을 즐기는 것이에요 그냥 즐기세요”. 듣고보니 우문현답이네요. 와인을 분석하는 것은 양조학자나 와인메이커, 소믈리에게 맏기고 소비자는 그냥 즐기면 되는 거죠 뭐. 가장 중요한 사실을 기자도 잊고 있었네요. 그는 소비자들이 와인을 쉽게 즐기도록 컬트 와인임에도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내놓았습니다. 국내시장에는 롯데주류를 통해 공급됩니다.

 

와인 오브 섭스탠스 까베르네 소비뇽

실제 그의 와인중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 오브 섭스탠스 까베르네 소비뇽(Wine of Substance Cabernet Sauvignon) 2016은 3만원대이지만 그의 프리미엄 와인 못지 않습니다. 소비자들이 알기 쉽게 카베르네 소비뇽의 약자인 ‘Cs’를 레이블이 큼지막하게 박아 놓았는데 워싱턴주 콜럼비아 밸리에서 생산되는 이 와인은 야생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필터링도 거치지 않으며 죽은 효모와 함께 숙성하는 쉬르리(Sur lees)를 12개월 동안거쳐 볼륨감이 넘치는 풍미를 만들어냈습니다. 블랙체리, 블랙베리 등의 과일향과 까시스, 허브향, 숙성된 와인에서 나타나는 담배와 흙냄새등 복합적인 향이 잘 어우러지네요. 

 

와인 오브 섭스탠스 소비뇽 블랑

와인 오브 섭스탠스 소비뇽 블랑(Wine of Substance Sauvignon Blanc) 2017은 콜롬비아 밸리의 고급 포도밭 앤시언트 레이크(Ancient Lake)의 포도로 만든 싱글빈야드 와인으로 젖산발효를 하지않아 소비뇽 블랑의 날카로운 산도를 그대로 살렸습니다. 하지만 포도가 충분히 익어 밸런스가 좋고 야생효모를 이용해 시간이 지날수록 독특한 풍미가 입안을 채웁니다. 레몬, 사과, 자몽 등 시트러스 계열 과일향이 입안을 상큼하게 씻어내고 미네랄이 풍부해 생선회 등 해산물 좋은 궁합을 보입니다.  

 

식스토 언커버드 샤르도네

식스토 언커버드 샤르도네(Sixto Uncovered Chardonnay) 2016은 스미스가 미국 최고의 샤르도네를 만들겠다는 열정을 쏟아부은 와인으로 오크향이 강한 미국 샤도네이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평소 좋아하는 뮤지션 식스토 로드리게스(Sixto Rodriguez)의 이름을 딴 와인으로 싱글 빈야드 3곳의 포도를 섞어 만듭니다. 레몬, 라임, 사과 등 시트러스 과일에서 서양배 등 핵과일 향이 풍부하고 쉬르리를 15개월 진행해 흔한 캘리포니아 샤르도네와 다르게 산미와 미네랄이 잘 뒷받침되는 프랑스 스타일의 와인이 탄생했습니다.  

 

K 빈트너스 로열 시티 시라

K 빈트너스 로열 시티 시라(K Vintners Royal City Syrah) 2015는 찰스가 만든 최고의 프리미엄 와인으로 라벤더 등 야생허브가 먼저 후각을 간지럽히고 블루베리, 블랙베리 등의 과일향과 플럼 등이 어우러지면서도 산도, 탄닌이 뒤를 잘 받치는 균형감이 느껴집니다. 

 

K 빈트너스 파워라인 시라

K 빈트너스 파워라인 시라(K Vintners Powerline Syrah) 2015는  왈라 왈라 밸리 남쪽 해발고도 365m 파워라인 빈야드에 생산된 시라로 빚는데 일교차가 큰 곳이라 산도가 뛰어나고 블랙베리와 흰꽃향이 어우러지며 27개월 오크 숙성을 통한 스모키한 풍미가 느껴집니다. 2017년 와인 스펙터 올해의 와인 2위에 올랐는데 “녹아웃 시라(Knockout Syrah)”라고 표현할 정도로 봄꽃처럼 화사한 풍미를 지녔습니다.

 

K 빈트너스 샤를로트

K 빈트너스 샤를로트(K Vintners Charlotte) 2014는 자신의 딸 샤를로트의 탄생을 기념하는 와인으로  무르베드르, 그르나슈, 시라, 꾸누아즈, 삑뿔을 섞은 프랑스 남부 론 스타일 와인으로 그의 실험작이기도 합니다. 감초 등 야생 허브와 잘익은 자두, 블랙체리 등 검은 과일향이 지배적입니다. 

 

K 빈트너스 엘 제프

K 빈트너스 엘 제프(K Vintners El Jefe) 2014 역시 그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와인입니다. 2002년 워싱턴주에서 가장 먼저 스페인 품중인 템프라니요를 길러 만든 와인으로 워싱턴주 떼루아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선보였다고 합니다. 검은 과일과 허브향이 주를 이룹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