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성범죄자도 MD로 버젓이 활동… 일탈 판치는 ‘불안전지대’

클럽 안전, VIP·일반인 ‘극과 극’ / 하루 수백만원 쓰는 고액 손님…가드 밀착 안내·경호 ‘특별 대접’ / 일반손님 위험 노출 ‘차별 대우’

#1. “클럽 버닝썬은 제 지인 사이에선 가장 안전한 클럽으로 통했어요. 그래서 버닝썬만 고집하는 애들도 많았고.”

 

이채림(여·가명)씨는 단골로 다녔던 버닝썬에서 각종 성범죄 사건이 빈번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씨는 버닝썬에서 테이블을 잡아놓고 하루에 600만원 이상씩 돈을 썼다. 버닝썬 가드(경호원)는 그를 입구부터 자리까지 밀착 안내를 해 주는 것은 물론 남자 손님들이 테이블에 허락 없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일대일 개인 경호를 제공했다고 한다. 화장실 앞까지 따라가 ‘새치기’를 해주는 등 극진한 대접이 이씨가 버닝썬만 찾는 이유이기도 했다.

 

#2. 씀씀이가 큰 이씨와 달리 버닝썬의 ‘보통 손님’이었던 다른 이모(23·여)씨는 “오늘 ‘픽업’(물 좋은 여성 게스트를 남자 테이블로 데려가는 것)이 안 돼 너무 힘들다”는 클럽 MD(영업직원)들의 간곡한 요청에 여러 차례 테이블에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이씨는 강제추행을 당하는 등 심한 모욕감을 느낀 경험도 있다. 한번은 무작정 입을 맞추고 끌어안는 등 스킨십을 강행하려는 남자 손님을 거세게 밀쳤더니, 오히려 이 남성은 이씨의 엉덩이를 차며 “너 같은 것, 길거리에 널렸다”고 소리쳤다고 했다.

마약 투약과 경찰과의 유착 의혹이 불거진 클럽 버닝썬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업소와 역삼지구대를 압수수색한 지난 2월14일 서울 강남구 클럽 버닝썬 앞에 반입금지 품목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뉴시스

세계일보가 4일 복수의 MD 등 클럽 관계자와 고객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마약유통과 성범죄, 경찰 유착 등 각종 의혹에 휩싸이며 지난 2월 문을 닫은 버닝썬은 폐업 전까지 철저히 ‘돈’을 기준으로 고객을 나눠 차별대우했다. 클럽 대부분이 고객의 안전보다 최대한 높은 수익을 끌어내는 데만 혈안이 된 탓에 형 집행 중인 성범죄자가 버젓이 클럽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증언에 따르면 버닝썬은 여성은 250만원, 남성은 400만원 이상 술값을 지불하면 개인 가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주말이면 3000명가량이 클럽을 채웠을 만큼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버닝썬에는 주말에는 평균 14∼16명, 평일에는 그 절반 정도의 가드가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VIP로 불리는 ‘고액 손님’과 달리 ‘일반 손님’들에게 클럽은 사실상 무법지대였다.

 

버닝썬에서 MD로 일한 경험이 있는 A씨는 “스테이지(무대) 쪽에 가드들이 배치된 클럽은 사실상 없었고 가드들은 VIP를 챙기는 역할을 했다”며 “VIP들이 일반 손님들과 충돌하지 않게 에스코트도 잘 해주고, 길을 원활하게 뚫어주는 등의 일이 주요 업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클럽에서 일하는 직원 신원은 ‘깜깜이’

 

클럽 측이 ‘VIP 모시기’를 우선순위로 두면서 자연스럽게 클럽에서 고객을 담당하는 MD의 관리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클럽이 MD를 채용할 때 근로계약서를 쓰거나 신원조회를 하는 사례가 없었고, 신분증조차 확인하지 않는 클럽이 대다수였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4월 경기도 일대에서 클럽 고객을 상대로 모텔과 차 안에서 성폭행하려다가 지난 2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B씨는 집행유예 기간인 현재 서울 강남의 유명클럽에서 MD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태원에서 MD로 활동하고 있는 C씨는 “술에 취한 여자 고객들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할 때가 많은 MD가 그런 죄를 짓고도 활동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도 “클럽에서 전과를 물어보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버닝썬에서 전직 MD로 활동한 D씨도 “버닝썬에서 일하는 MD가 300~400명에 달할 때도 있었다”며 “업장 입장에서는 문제를 일으키고 (MD가) 도망간다고 한들 조처를 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등의 MD들은 관리자 1명에 팀장 4~6명, 그 밑에 10명 내외의 팀원 단위로 활동하는 형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팀원 선발은 오롯이 관리자나 팀장 등의 인맥과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팀원들이 한 조직에서 오래 일하는 경우도 드물다.

 

경찰 관계자는 “극히 일부 MD의 일탈일 수 있지만 실적을 올리기 위해 유흥업소 종사자 등을 데리고 다니며 성매매를 유도하거나 게스트들을 억지로 룸으로 데리고 가는 등 일탈을 하는 MD들이 있다”며 “이들을 미리 확인하고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클럽에서 일하는 가드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현행 경비업법상 시설경비업무를 맡은 경호원이 20명 이상일 때만 관할 경찰서에 등록 후 신원조회를 할 의무가 생긴다. 폭행과 성범죄 경력이 있는 직원들이 클럽 가드로 근무하면서 오히려 고객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 부추기는 흐릿한 폐쇄회로(CC)TV

 

흐릿한 CCTV 역시 문제로 꼽힌다. 3일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성범죄 신고 등이 와서 현장을 출동해도 CCTV가 적어 사각지대가 많거나 동선 추적이 불가능하고, 지나치게 안 좋은 화질과 일부 흑백 CCTV 등으로 수사에 곤혹을 느낄 때가 많다. 성범죄자들이 이 점을 활용해 범죄를 스스럼없이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서초구의 유명 M클럽은 하루 범죄 발생 신고 건수가 높은 편이지만 현재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CCTV가 한 대도 없는 상황이다. 한 대 달린 것마저 며칠째 고치지 않아 사실상 범죄 확인이 불가능하다.

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유흥업소 내에서 발생한 성범죄 건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16년 총 2만8993건의 연간 성범죄 발생 건수 중 6.5%(1878건)를 차지하던 유흥업소 내 성범죄 발생률은 지난해 10.4%로 크게 늘었다.

 

클럽을 자주 찾는 채모(23·여)씨는 “클럽 내 감시 가드를 늘리고 CCTV만 설치해도 범죄율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고액테이블이라고 범죄를 눈감아 주는 공공연한 관행이나 클럽에 온 여자를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잘못된 발상, 게스트로 들어왔으니 마치 고액테이블에 가서 접대라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며 “클럽 내 고객센터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박세준·김준영·이복진·김라윤·김청윤 기자 ry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