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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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제주, 한껏 취해 봄 [여행]

“노란꽃 즈려밟고 님아, 가시옵소서”… 녹산로 ‘유채 찬란’ / 숨은 유채꽃 명소, 엉덩물계곡 강추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제주 사계리 용머리 해안.

4월로 접어들면서 전국에서 꽃소식이 들려온다. 하나 누가 뭐라 해도 봄꽃 하면 제주 유채꽃을 빼놓을 수 없다. 유채는 추위에 강한 초봄의 대표적인 꽃이다. 요즘 제주도는 가는 곳마다 만개한 유채꽃이 샛노랗게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때마침 지난주에는 유채꽃 축제가 열려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기자도 시간을 내 유채꽃밭과 엉덩물계곡 등 대표적인 유채꽃 명소를 다녀왔다. 천지가 노란물결 축제였다. 꽃구경 간 김에 태곳적 신비감이 깃든 용머리 해안과 단산(바굼지 오름)과 풍차 해안도로도 찾았다. 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제주 특유의 신비와 정취를 느끼게 했다.

해안을 따라 멋지게 펼쳐진 도두 무지개도로

◆액자 속 그림 같은 도두 무지개도로와 신창 풍차 해안도로

제주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찾은 곳이 도두 무지개도로다. 도두1동은 용천수가 솟는 오래물이 있는 곳이다. 오래물이란 여름에는 차갑고 겨울에는 따뜻해 마을 주민들이 식수 등으로 사용해온 물이다. 도두동 해안가를 따라 무지개 빛깔로 방호벽이 조성돼 있는 도로가 있는데 일명 ‘무지개도로’로 불린다. 방호벽은 대체로 노란색과 검은색 빗살무늬로 도색되어 있는데 이곳 방호벽은 무지개색으로 칠해져 있다. 주변 해변과 어우러져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경관을 연출한다. 올레길 코스에 있어 주민과 관광객이 잠시 쉬며 사진을 찍는 곳으로 최근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저 밋밋한 도로에 색깔을 입혀 동심을 부르는 이색적인 지대로 거듭나면서 방문객과 출사객이 몰린다.

풍차가 이국적인 정취를 부르는 신창 풍차 해안도로도 방문객이 몰린다. 제주에서 가장 강한 바람이 부는 곳으로 유명한 신창리에는 한국남부발전(주)의 한경풍력발전소 단지가 2004~2007년 조성됐다. 6㎞ 구간에 개설된 해안도로 인근에 바다 쪽으로 도열해 있는 풍차는 낭만 그 자체다.

 

풍력발전단지 인근에 있는 싱계물공원과 해안도로는 광고 속 배경으로도 많이 나오는 명소가 된 지 오래다. 사시사철 관광객이 몰리고, 자전거 동호인들이 해안도로 하이킹 코스로 선호한다. 특히 일몰 때면 바다풍차와 어우러진 낙조가 압권이다. 이곳에는 원담을 볼 수 있다. 원담은 제주 해안에 돌담을 쌓아 밀물을 따라 들어온 물고기들을 썰물에 수심이 얕아지면서 그 안에 자연적으로 갇히게 해 들어온 물고기를 손쉽게 집을 수 있도록 만든 돌담이라 특이하다.

 

용머리 해안.

◆이국적인 신비감 부르는 용머리 해안과 단산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산 앞자락에 위치한 용머리 해안은 180만년 전 물속에서 화산이 폭발해 층층이 쌓인 절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수천만년 동안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사암층이다. 길이 600m, 높이 20m로 구불구불 돌아가는 해안 경관이 이국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언덕의 모양이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 전설에 의하면 용머리가 왕이 날 훌륭한 형세임을 안 중국 진시황이 호종단을 보내어 용의 꼬리 부분과 잔등 부분을 칼로 끊어 버렸는데 이때 용머리 해안에는 피가 흘러내렸고 산방산은 괴로운 울음을 며칠째 계속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바람과 비와 파도가 만들어낸 용머리 해안의 웅장함을 둘러보는 데 30분가량 소요된다.

 

기자 일행이 점심 식사 후 나른한 몸을 이끌고 방문한 곳이 단산(바굼지 오름)이다. 산방산 서쪽 1㎞에 있는 응회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오름으로 거대한 박쥐(바굼지, 바구미)가 날개를 편 모습 같고, 또는 대바구니 모양을 연상한다 하여 단산(簞山)이라고 불린다. 높이는 158m밖에 되지 않으나 정상에 오르면 산방산과 송악산, 파란 바다 위에 떠 있는 형제섬이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에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오르는 계단이 가팔라서 높지는 않지만 오르려면 숨이 턱까지 찬다. 그러나 정상에 오르면 풍광과 바람이 적절히 불어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노란꽃바다 가시리 조랑말체험공원과 엉덩물계곡

 

서귀포시 표선면 중산간의 가시리 유채꽃길은 요즘 발 디딜 틈이 없다. 이곳은 유채꽃플라자와 조랑말 박물관이 있다. 제주에너지공사에 건립한 풍력발전을 위한 풍차 13기도 설치돼 요즘 유채꽃가 어울려져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4일부터 나흘간 이 일대에서는 유채꽃 축제가 열려 끝없이 펼쳐진 유채꽃밭과 풍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몰려든 관광객으로 인산인해였다. 특히 가시리마을을 가로지르는 녹산로는 봄에 유채꽃과 벚꽃이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자아내는 길로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에 선정된 명소다. 하나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니 아쉬운 대목이 있다. 꽃구경을 온 일부 외지인이 쓰레기를 가져와 몰래 이곳에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가시리 주민들이 이맘때 쓰레기 처리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당국의 계도와 성숙한 시민 의식이 아쉽다.

 

엉덩물 계곡 유채꽃밭

조랑말체험공원과 함께 최근 새롭게 유채꽃 명소로 부각되는 곳이 엉덩물계곡이다. 서귀포시 색달동 중문관광단지 내에 있는 이곳은 바위가 많고 지형이 험해 물을 먹으러 온 짐승들이 접근하지는 못하고 엉덩이를 들이밀고 볼일만 보고 돌아갔다고 해서 엉덩물계곡이라고 불린다. 단지 내 롯데호텔 동편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아직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입소문을 듣고 찾은 이들이 늘고 있다. 계곡을 따라 조성된 유채꽃밭이 한 폭의 그림이나 다름없어 연인들이나 출사객이 즐겨 찾는다. 유채가 인위적이지 않고 보는 이에게 제주다움을 느끼게 한다. 지난 2년 동안 이곳에는 유채꽃이 심어지지 않았으나 올해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에서 유채꽃을 직접 심는 수고 덕에 이곳의 그림 같은 유채꽃을 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이곳들은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가 추천할 정도로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인생 사진’이 나온다고 ‘강추’한 곳이다.

 

◆웰빙식으로 주목받는 제주 서민들의 토속음식 낭푼밥상

 

이번에 새롭게 접한 것이 제주 애월읍의 ‘낭푼밥상’이다. 옛 제주 서민들이 흔히 차려 먹던 상차림을 말한다. 낭푼은 양푼의 제주식 사투리다. 해설사에 따르면 하루 내내 바다에서 물질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당시 해녀들은 가족의 삼시 세끼를 일일이 직접 차려 줄 순 없었다. 그래서 물질 가기 전, 소반 중앙에 감자를 넣고 지은 밥을 큰 낭푼에 가득 담아 올려놓고는 언제든지 식구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차린 것이 낭푼밥상이다. 과거 가난한 제주 서민들의 향토음식이 요즘은 제주 1호 향토요리 명인 김지순씨에 의해 고급스러운 웰빙식으로 재탄생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전분공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 앤트러사이트

이색적인 곳에서 휴식과 커피 한 잔이 생각나면 제주 한림읍의 ‘앤트러사이트’도 가볼 만하다. 전분공장을 리모델링해 카페로 만들었다. 돌로 벽을 쌓고 나무로 지붕을 만든 거대한 창고 모양의 카페다. 카페 내 흙바닥엔 녹색식물들이 자라고 정체불명의 녹슬고 수명을 다한 기계들이 카페 내에서 떡하니 손님을 맞는다. 수십 년 전에 감자와 고구마를 부수고, 갈고, 말리곤 하던 장소임을 짐작게 한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카페 내 이곳저곳 둘러보는 재미도 색다르다.

 

한편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는 여행자들이 제주도 내 풍광 좋은 곳의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고 리뷰어 등으로 좋은 의견을 받는 것이 여행트렌드라는 것에 착안했다. 이에 따라 이들로부터 제주 사진 명소를 추천받아 40개소를 선정하여 중문관광단지 홈페이지에 세부정보를 담은 미니페이지를 개설했다.

 

제주=글·사진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