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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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난·고령화 벽 넘어… ‘도시생활 새 미래’를 찾다

도심 세미나 참석 전문가 3人
오포드 튜브하우스 조감도.
도시의 끝없는 팽창과 사회의 고령화는 지구적 현상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시대 도래와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 본격화는 주거환경에도 근본적 변화를 예고한다. 이 시대 새로운 주거형태는 무엇인지,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무엇인지는 모두의 관심사. 지난 4,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도심생활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국제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다양한 비전과 대안을 제시했다.

 

◆ ‘튜브하우스’로 주거혁명 도전장 낸 제임스 로

 

인구밀도 높은 홍콩의 주택난은 특히 자립 기반을 갖추지 못한 젊은층엔 큰 고통이다. 일찌감치 주택난이나 환경오염 등 현세대가 처한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지속가능한 주거혁명을 시도해 온 홍콩 건축가 제임스 로(사진)는 ‘오포드 튜브하우스(OPod Tube House)’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과잉생산으로 빈터에 방치된 대형 콘크리트 수도관을 주거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것. 2017년 말 모델이 공개된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홍콩 정부가 호응하면서 규모가 더욱 확장돼 내년 첫 입주자를 맞아들이게 된다.

제임스 로 사이버텍처 대표는 지난 4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며칠 전 바다를 바라보는 부지를 제공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원래 20개를 만들 예정이었는데 저렴한 주택에 대한 요구가 커져서 150개 제작으로 프로젝트가 커졌다”고 말했다. 지름 2.5m, 길이 2.6m 수도관 2개를 연결하는 튜브하우스는 입구가 대형 창 역할도 하며 형광등은 선반 아래 남는 공간에 설치했고 소파는 접이식 침대로 만들어 약 2.8평 남짓한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럼에도 스칸디나비아식 원목 바닥 등으로 꾸며진 내부는 안락하며 여러 개를 쌓아올려 아파트를 만들 수도 있다. 한 채 건설비용은 약 1700만원인데, 비슷한 부동산 시세의 20%인 월 47만원쯤에 임대할 예정이다.

저렴한 임대료는 청년층을 위해 만들어지는 튜브하우스가 가진 상징성 때문. 입주자 선정도 특별한 방식으로 할 예정이다. 로 대표는 “튜브하우스는 단순한 거주 프로젝트가 아니라 소셜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라며 “특히 전용 앱을 만들어서 젊은 입주 희망자의 나이, 학력, 경력, 소득과 미래 희망 등을 파악해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선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입주기간은 최장 2년이며 임대료 절반은 입주자 몫으로 모아 퇴거 시 새출발 종잣돈으로 돌려준다.

우리나라 카이스트에서 오랫동안 스마트시티를 가르치기도 했던 로 대표는 “튜브하우스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세계 보편적 문제”라며 “집값 인플레이션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특히 청년의 삶에 고충을 준다.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인데 홍콩이 더 빨리 심각성을 인식했을 뿐이며 이미 남아프리카, 필리핀, 뉴질랜드, 중국에서도 튜브하우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국에서도 정부, 공공기관, 사회단체 어떤 파트너라도 이 프로젝트에 관심있다면 대환영이다”라고 말했다.

 

◆日 도심 쇠락지 부흥 이끈 요시자토 히로야

 

요시자토 히로야(사진) 도쿄R부동산 공동대표는 부동산의 중개·개발·재생을 기획하거나, 건축물 디자인 및 상업공간 브랜딩을 진행하는 폭넓은 영역을 넘나드는 건축가다. 특히 낡고 특이한 건물의 가치를 재발견해 인근 지역까지 부흥시키는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센트럴 이스트 도쿄’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신주쿠, 하라주쿠 등 번화가가 몰린 도쿄 서부와 달리 쇠락 지역이었던 도쿄 동부 지요다구의 유령건물이나 다름없던 ‘아가타 다케자와 빌딩’을 갤러리, 출판사, 주얼리 공방, 부티크 등이 모인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결과 주변까지 활기를 되찾았다.

 

요시자토 대표는 지난 4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부동산 개발에 나선 15년 전만 해도 건축가와 부동산업은 거리가 있던 상황이나, 대학·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하니 건물 자체를 잘 짓기 이전에 어떤 건물을 세우고 어떻게 운영할지, 완성 전후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돼 부동산 디벨로퍼가 됐다”고 설명했다.

 

센트럴 이스트 도쿄의 경우 젊은 사람이 없는 지역이었으나 도쿄역과 가깝고 임대료가 싸며 옛 도쿄의 영화가 남은 고풍스런 빌딩이 많아 새로운 가치를 찾게 됐다. 서울에서도 서촌, 연남동, 성수동 등이 비슷한 경로를 밟았으나 임대료 상승 등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요시자토 대표는 “일본은 대규모 재개발 등이 아니면 젠트리피케이션이 안 일어나는 편”이라며 “임차인 권리가 강해서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리고 싶어도 임차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올릴 수가 없다. 그래서 집세를 올린다 해도 평당 1만엔을 1만3000엔으로 올리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퇴락한 도심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요시자토 대표의 새 프로젝트는 농촌 살리기다. 오사카 인근 도요노라는 한 촌락을 도시인의 두 번째 삶의 공간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요시자토 대표는 “일본은 인구가 급감하면서도 도심 집중 현상이 심해 나라 전체가 활력을 잃고 있다. 전국에 빈집이 1000만채 이상”이라며 “도시인에게 왕래하며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집을 마련해줌으로써 도시와 지방을 연결하는 관계 인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지방을 살리겠다’며 무작정 이주 정책을 펴는 것보다는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월 1만엔 정도로 농촌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도시인이 큰 부담 없이 지방 생활을 경험하며 지역민들과 관계를 키워나가는 게 보다 현실적이라는 설명이다.

 

◆AI 기반 가정생활 미래 구현하는 미키김

 

미래 주거 공간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면서 야심찬 비전을 실현 중인 곳은 구글이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AI음성비서 기술인 구글 어시스턴트를 기반으로 가정의 네트워크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핵심은 아마존 알렉사와 선두 경쟁 중인 AI(인공지능) 스피커 구글 홈. 미키김(사진) 구글 아태지역 하드웨어 총괄 전무는 “인터넷 발전의 역사를 보면 대략 10년의 주기를 만들어왔는데, 우리는 지금 또 다른 10년을 시작한다고 본다. 그 중심에 AI가 있고, AI시대에는 음성이 기계와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가정에 들어온 개인용컴퓨터가 1990년대 인터넷 보급으로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며 모두의 생활을 바꿨다는 설명이다. 이후 2000년대 스마트폰 시대가 열려 강력한 컴퓨팅 파워가 개인의 손 안으로 들어왔고 이후 다시 멀티터치·스크린터치가 기기와 소통하는 주요 수단으로 자리잡았는데 앞으로는 음성이 큰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구글 홈의 경우 지난해 9월 국내 출시된 상태. 계속 기능 보강·확대 중인데, 현재 일정 관리와 날씨 확인 등 AI비서 역할은 물론 가전·스마트 플러그·보일러 등 다양한 홈 자동화 파트너 기기와 연동시켜 음성으로 집 안 여러 기능을 통제하는 게 가능하다. 김 전무는 “음성검색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옛날 같으면 ‘삼성동 맛집’으로 검색했다면 요즘은 ‘삼성동에 뭐가 맛있지’식으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가정 중심에 AI가 자리 잡고 있지만 그 방식은 최대한 자연스럽게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러운 ‘앰비언트 컴퓨팅’이 대세라는 설명이다. 김 전무는 “과거에는 기계가 전면에 나섰지만 지금은 필요할 땐 도와주고 아닐 땐 뒤에 숨어있는, 컴퓨터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인테리어에 자연스레 녹아든 느낌을 추구한다”며 “구글 홈도 기계가 ‘나 여기 있어요’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조약돌처럼 만들었다. 앞으로 홈 컴퓨팅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 전무는 네이버·다음·삼성전자 등도 구글과 경쟁하는 우리나라 AI스피커 시장에 대해 “정말 특이하다”고 말했다. 전 세계를 놓고 구글·아마존이란 두 거인이 혈투를 벌이는데 지역 차원에서 도전장을 내민 건 거의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설명이다. 김 전무는 “우리나라가 기술력이 있어서 그렇다”면서도 “경쟁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은 한두 개로 정리될 텐데 누가 이기고 질지 아직 아무도 모르고 결국 이기는 사람은 소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박성준·사진 남정탁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