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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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정의’ 못 내리는 사이 '스토킹'은 늘고 있다 [이슈+]

입법예고 1년 가까이 ‘공전’ / “의사 반한 반복적 공포 조장행위” / 법무부 범죄 정의… 작년 입법예고 / 법원 “대법 판례로 규정해야” 맞서 / 가해·피해자 분리조치 재량권 싸고 / 법무부·경찰도 이견… 조율 난망 / 法 공백에 스토킹 범죄 1.4배 늘어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에서 김모(50)씨가 전처 이모(47)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김씨는 이씨의 승용차에 위치정보시스템(GPS) 장치를 몰래 장착하는 등 수년간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그는 범행 당일 두 시간 전부터 아파트 주차장에서 기다리다가 새벽운동을 나가던 피해자를 공격했다. 이 경우를 스토킹범죄로 정의할 수 있을까.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가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 방지 종합대책의 후속조치로 지난해 5월 입법예고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스토킹처벌법 정부안)이 스토킹범죄 정의 등 유관부처(법무부·대법원·경찰청·여성가족부) 간 이견으로 1년 가까이 공전하고 있다. 입법예고 당시 법무부는 2018년 상반기 중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해를 넘기고 말았다.

 

법무부가 지난해 입법예고한 스토킹처벌법 정부안은 스토킹 범죄를 ‘피해자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피해자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로 정의했다. 스토킹 범죄가 인정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고 가해자·피해자를 분리하는 잠정조치도 도입돼 법원은 검찰 청구를 통해 가해자에게 접근금지 조치 등을 명령할 수 있다.

 

문제는 입법예고까지 마쳤지만 법무부와 법원 간 스토킹범죄 정의를 둘러싸고 이견 등이 발생해 정부안이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원은 스토킹범죄 정의를 획일적으로 내리는 것에 난색을 표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자칫 스토킹범죄를 넓게 해석해 범죄가 아님에도 처벌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대법원 판례 등을 통해 스토킹 범죄를 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했다. 반면 법무부는 법안 발의를 위해 스토킹범죄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고 맞선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잠정조치를 둘러싼 법무부와 경찰 간 이견도 넘어야 할 산이다. 경찰 측은 잠정조치 과정에서 자신들의 재량권이 넓어져야 한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경찰로서는 잠정조치를 위해 검찰이나 법원에 영장에 준하는 것을 받아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경찰의 재량권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이냐를 두고 이견이 있다”고 말했다.

 

관련 부처 및 기관 간 의견조율도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여성계가 입법예고된 스토킹처벌법 정부안의 처벌수위를 올릴 것을 주장하는 점도 여가부로서는 부담이다.

법무부가 지난해 입법예고 당시 공개한 스토킹처벌법 정부안에 따르면 대법원, 경찰청, 여가부 등과 해당 제정안에 대한 합의가 이미 이뤄졌다고 명시됐지만 결과물은 아직 없다. 정부가 유관부처 간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무리하게 입법예고를 추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관련 법안 마련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스토킹범죄의 법적 공백 상태가 길어지며 범죄 건수는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스토킹범죄 발생 건수는 436건으로 2013년 312건보다 1.4배가량 늘었다. 장윤미 변호사는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은 피해가 발생해야 법원에서 인용돼 사전에 범죄를 막을 수 없다”며 “현행법으로는 스토킹범죄 피해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 전화 대표도 “현재도 스토킹범죄로 많은 피해자가 고통받고 있다”며 “정부에서 이견을 조율해 서둘러 정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