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회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느니 취가(취업+장가. 취직 대신 장가간다는 의미)를 갔으면 좋겠다. 요리는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고, 예쁜 그릇을 보면 사고 싶다. 군복무는 시간낭비였다. 남자만 군대 가는 것은 차별 아닌가? 요즘 보면 ‘성평등’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젊은 남성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것 같다. 성차별은 윗세대의 일인데….’
언제부턴가 ‘20대 남성’이 우리 사회의 ‘현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성적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이지만, 페미니즘에는 심한 거부감을 보이며 ‘젠더 전쟁’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진보적인 듯하면서도 보수적인, 개방적이면서도 폐쇄적인 20대 남성을 이해하는 것은 갈수록 심화하는 세대·성별 갈등을 풀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제다.
18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개원 36주년을 맞아 개최한 세미나의 주제도 그래서 ‘2019 변화하는 남성성을 분석한다’였다.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은 “현재 우리 사회는 성평등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성평등 정책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며 “성평등이 갈등과 대립이 아닌 공존과 협력의 언어로 자리매김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행사 의의를 밝혔다.
이날 발표를 맡은 마경희 정책연구실장의 설문 결과는 ‘격변하는 20대 남성’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전통적 성역할’에 대해 윗세대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남자는 무엇보다 일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 40대(동의 응답률 40.0%), 50대(52.5%)들과 달리 20대는 34.1%만 긍정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률이 ‘동의한다’보다 더 많은 유일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가족의 생계는 남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부양 이데올로기에도 33.1%만 동의하고, 41.3%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40대와 50대는 동의 응답률이 모두 절반을 넘었고, 30대 남성도 49.6%가 부양자로서의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20대 남성은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상관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데도 가장 높은 비동의 응답률을 보여 ‘어떻게든 사회에서 살아남아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만큼 과거 여성적으로 여겨진 역할이나 기질을 받아들이는 데는 ‘열린‘ 모습이었다.
47.2%가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면 이직을 고려하겠다’고 답했고, ‘청소, 빨래 등 집안일 관련 정보를 자주 찾아본다’ ‘가구, 그릇 등 살림살이에 관심이 많다’는 응답률도 가장 높았다.
고정적 성역할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은 군 복무에 대한 인식으로도 이어졌다.
흔히 이야기하는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에 대해 50대(동의 응답률 67.6%)는 물론, 30대도 56.6%가 동의했지만, 20대는 50.0%로 가장 낮았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에게는 알게 모르게 특권이 있다’는 데도 40% 안팎의 비율로 동의한 40∼50대와 달리, 20대는 26.7%만 그렇다고 받아들였다.
이는 군대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20대 남성들은 ‘군대는 가능하면 안 가는 것이 좋고(82.6%), 군복무는 시간낭비(68.2%)이며, 잃는 것이 더 많다(73.5%)’고 생각했다.
남성만 군대를 가는 것도 불평등이라 여겼다. 20대 남성 72.2%는 ‘남자만 군대 가는 것은 차별’이고 따라서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한다’(64.7%)고 생각했다. 지금과 같은 징병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걸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어떤 세대보다도 반페미니즘적인 세대가 바로 20대 남성이었다.
마 실장이 설문자들의 응답을 토대로 유형을 분석한 결과 20대 남성 두 명 중 한 명꼴로 반페미니즘 혹은 적대적 성차별 의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30대(38.7%), 40대(18.4%), 50대(9.5%)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20대 남성 23.8%는 온정적 가부장주의를 보였고, 반성차별주의 성향을 가진 이들은 25.7%에 불과했다.
이들의 반페미니즘 인식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군복무와 남초 커뮤니티 방문 경험, 페미니즘 운동 등이 꼽혔다. 마 실장은 “청년 남성에게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제도, 문화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이들의 희생과 남성성을 강요하는 징병제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