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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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특검·측근 가릴 것 없이 “잘라버려…없던 일로 해”

뮬러 특검 임명되자 “대통령직 끝…망했다” / '무혐의 공표' 거부한 FBI 국장 해임 / '셀프 제척' 세션스 전 법무장관에게 분노
사진=A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는 미 국민으로부터 ‘무죄 추정’을 얻지 못했고 (공화·민주) 양당은 검열되지 않은 (완전한) 특검보고서를 확인해야 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448쪽에 이르는 로버트 뮬러 특검 보고서 편집본이 공개된 18일(현지시간) 사설을 통해 이렇게 촉구했다. 특검은 이번 수사에서 ‘트럼프 캠프가 미 대선에 영향을 주려고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의혹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내렸지만, 사법방해 의혹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공개되지 않은 내용을 전부 확인해야 한다고 NYT는 지적했다.

 

◆“트럼프, 법률고문에 ‘뮬러 특검, 물러나게 하라’ 지시”

 

미 언론은 특히 특검수사 저지를 위해 특검 해임을 추진하고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잘라버리는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방해 시도가 공개된 편집본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지적했다. 이날 의회에 제출된 특검보고서 편집본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의혹과 관련해 특검이 검토한 10개 사례가 나열됐다.

 

먼저 뮬러 특검의 해임을 추진한 내용이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5월 뮬러 특검이 임명된 후 한달쯤 뒤에 자신의 사법방해 의혹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보도가 나오자 도널드 맥갠 백악관 법률고문에게 전화를 걸어 ‘법무장관 대행에게 전화를 걸어 뮬러 특검이 이해 충돌로 물러나야 한다고 밝히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맥갠 고문은 이를 거부하고 사임을 택했다. 1973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수사를 맡은 특검을 해임했다가 결국 하야하게 된 사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2018년 1월 뉴욕타임스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뮬러 특검 해임 지시 의혹을 보도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맥갠 고문에게 ‘허위 보도’라고 반박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맥갠 고문은 끝내 거부했고 백악관이 나서 ‘가짜뉴스’라고 수습했다.

 

◆“트럼프, ‘무혐의 공표’ 거부한 FBI국장 해임”

 

제임스 코미 당시 FBI 국장을 해임해 수사를 막아보려던 노력도 편집본에 담겼다.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 초대 국가안보보좌관인 마이클 플린이 세르게이 키슬략 주미 러시아 대사와 접촉하고도 허위보고한 사실이 드러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 당시 FBI 국장을 백악관으로 불러 ‘충성맹세’를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린을 경질한 뒤 코미를 집무실로 불러 ‘플린을 잘랐으니 이제 좀 놔두라’는 식으로 압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제임스 코미 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진 만류에도 코미에게 ‘러시아 스캔들을 둘러싸고 있는 구름을 걷어내라’는 식으로 자신의 무혐의를 공표하라고 압박했지만 2017년 5월 코미가 의회 청문회에 나와 ‘트럼프 대통령이 수사 대상이냐’라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자 해임을 결심했다.

 

백악관 참모진은 코미 해임을 법무부의 독립적 판단에 따른 결정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법무부의 의견서를 받기도 전에 ‘전격 해임’을 결정했다.

 

◆“트럼프, ‘셀프 제척’ 법무장관에 분노”

 

제프 세션스 전 법무장관을 압박해 수사를 막으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세션스 전 장관이 2017년 2월 트럼프 대선캠프에 몸담았던 점을 들어 러시아 스캔들 수사 지휘 기피를 고민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맥갠 고문에게 세션스의 기피를 저지하라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세션스가 ‘셀프 제척’을 발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분노했다.

 

제프 세션스 전 미국 법무장관. AP연합뉴스

같은 해 5월 뮬러 특검이 임명되자 세션스는 사임서를 제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받아주지 않았다. 이후 여러 차례 세션스에게 제척 철회와 2016년 대선 맞수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지만 세션스는 끝내 거부했다. 결국 지난해 11월 중간선거가 끝나자 충성파인 윌리엄 바를 법무장관에 기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사대상인 측근들도 집요하게 압박했다. 옛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루를 최소화한다는 내부적 기본방침이 있었다고 특검에 진술했다. 그는 이에 따라 2015년 9월부터 2016년 6월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차례 모스크바 트럼프 타워 건설 추진 상황을 보고했으나 의회에서는 세 차례만 보고했다고 허위 증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언이 압수수색을 당하자 ‘힘을 내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간접적으로 압박했고, 코언이 결국 등을 돌리자 ‘쥐새끼’라고 공격했다.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 쪽에는 자신의 연루 의혹 관련 정보를 알고 있다면 언질을 달라고 요구했다.

 

2016년 대선 과정에서 위키리크스가 러시아측 해킹으로 확보된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측 이메일을 대거 공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해킹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으나 위키리크스 쪽에 추가 공개 계획이 있는지 알아봤다는 내용도 편집본에 담겼다.

 

2016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그해 6월까지 모스크바 트럼프타워 건설이 추진됐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부인해왔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2016년 6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러시아 국적 변호사 등이 참석한 회의와 관련해서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 이메일을 공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메일이 공개되자 아들 명의로 내는 해명 성명을 직접 수정했다.

 

사진=AP연합뉴스

◆“트럼프, 뮬러 특검 임명소식에 ‘망했다’ 한탄”

 

트럼프 대통령은 뮬러 특검 임명 소식을 듣고 “내 대통령직은 끝났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세션스 법무부장관으로부터 뮬러가 특검으로 임명됐다는 보고를 받은 뒤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뒤 “오 마이 갓. 끔찍하다.

 

이것으로 내 대통령직도 끝났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미 언론들이 특검 수사결과보고서 편집본을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망했다”, “X됐다”는 등의 뜻을 지닌 비속어(f****d)도 내뱉었다고 덧붙였다.

 

이 내용은 세션스 전 장관의 비서실장인 조디 헌트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 지휘에서 손을 떼겠다고 ‘셀프 제척’을 선언한 세션스 장관에게 화나 나 “제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가 있나”라고 따졌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이어 세션스 전 장관에게 “모든 사람들이 내게 ‘독립적 특검이 생기면 당신의 대통령직을 망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이는 내게 일어났던 일 중 역대 최악”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