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빙 빈센트’, 움직이는 그림으로 담아낸 고흐의 삶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란 영화를 보면 어때?”
집에서 볼 영화를 고민하던 지난 휴일, 지인이 추천한 영화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삶을 담은 것이었다. 제작에 총 10년이 걸린 이 영화는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107명의 작가가 고흐의 화풍으로 그림 6만2450점을 그렸고 그것을 엮어서 만들었다.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흥미롭게 보고 감동할 수 있다. 2017년 국내 개봉한 이 영화의 누적 관객 수는 41만여명에 달한다.
영화는 고흐가 죽은 지 1년 뒤의 시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고흐의 친구였던 집배원 조셉 룰랭이 아들 아르망에게 고흐의 흔적을 찾는 심부름을 보내면서부터다. 아르망은 고흐가 죽은 프랑스의 도시 오베르로 향한다. 그가 머물렀던 장소를 찾고, 그가 만났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흐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추적하게 된다. 고흐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일련의 사건을 알게 되고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평범한 가정의 청년이 화가가 되기까지
고흐는 27세에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늦깎이 예술가였다. 그는 1853년 네덜란드 브라반트주의 준데르트에서 태어났다. 개신교 목사인 테오도루스 반 고흐와 안나 코르벤투스의 2남3녀 중 둘째였다. 가족은 화목했고 산책을 자주 함께했다. 이때의 경험이 고흐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눈을 갖게 했다고들 이야기한다.
16세가 되던 해에 그는 숙부가 운영하는 헤이그의 한 갤러리에서 일을 시작했다. 판화를 복제해 판매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 무렵 가족들에게 첫 편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는 고흐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편지에 종종 작은 스케치를 그려 넣곤 했다. 편지를 받았던 동생 테오는 그에게 그림 그리는 일을 추천했다. 고흐는 드로잉 기법을 익히고 다른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작품 세계를 펼쳐 나갔다.
고흐는 처음에는 고국의 작은 마을인 뉘넨에서 주로 자연이나 농민을 그렸다. ‘이삭 줍는 여인들’(1857)과 ‘만종’(1857∼1859)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를 존경했던 그는 농민의 삶을 어두운 톤으로 화폭에 담아냈다. 야외에서 그린 밝은 색채의 풍경화가 유행하던 시기라 작품을 인정받거나 팔기는 어려웠다.
고흐는 자신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느꼈다. 벨기에 안트베르펜으로 이주해 색채론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유다. 그 뒤에는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당시 유럽 미술계의 주류 흐름 속에 머물며 회화법을 습득했다. 파리 생활에 염증을 느낀 뒤로는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옮긴다. 이곳에서 아름답기로 알려진 밤의 풍경을 많이 그렸다.
아를에서 고흐는 폴 고갱(1848∼1903)과 함께 지냈다. 성격 차이로 두 사람의 우정은 결국 파국을 맞는다. 고갱이 떠난 뒤 좌절한 고흐는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른다. 이 일을 계기로 아를의 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그곳을 떠나 생레미의 요양원에 자진해 입원했다. 그곳을 나와서는 파리 근교의 오베르에 머문다. 이곳에서 7개월을 보낸 뒤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고, 총탄에 감염돼 약 30시간 뒤 숨을 거둔다.
#평화롭기에 더 슬퍼 보이는 밀밭 풍경
고흐의 그림 중 가장 슬픈 것으로 알려진 그림은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이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에 그린 마지막 그림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어둡게 그려진 낮은 하늘 아래 요동치듯이 밀밭이 움직인다. 밀밭으로 몰려드는 까마귀 떼는 불길함이 엄습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길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드러난다.
고흐에게 밀밭은 그림의 중요한 소재였다. 밀밭의 색만큼이나 내용에도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는 언젠가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밀의 이야기와 같다고 느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연 순환의 맥락과 의미 있는 것으로의 탄생에 대한 희망이 느껴진다.
실제로 고흐의 작품 중에는 밀밭을 그린 작업이 많다. ‘자고새가 있는 밀밭’(1887), ‘밀밭’(1888), ‘밀밭의 농가’(1888), ‘수확’(1888), ‘수확하는 사람과 밀밭’(1889), ‘뇌운 아래의 밀밭’(1890)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중 ‘뇌운 아래의 밀밭’이 ‘까마귀가 나는 밀밭’보다 슬픈 느낌이 든다. 부드러운 초록이 밀밭을 가득 채워 초여름쯤 그린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흰색을 혼합한 색을 대부분 사용해 차분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러면서도 중간에 붉게 남긴 몇 개의 점은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분명 제목에는 뇌운이라고 돼 있는데도 어쩐지 하늘은 맑고 구름도 밝은 느낌을 풍긴다.
“이 작품이 네게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얘기할 거라고 믿어. 나는 전원의 건강함과 기운 북돋움을 생각하며 그렸어.”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뇌운 아래의 밀밭’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그림의 분위기처럼 설명에서도 긍정적인 느낌이 풍긴다.
믿기 어렵지만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뇌운 아래의 밀밭’은 1890년 7월, 같은 달에 그린 그림들이다. ‘뇌운 아래의 밀밭’을 보면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사이에 희망이 사그라지는 것을 넘어 절망의 구덩이에 빠져버린 것이 안타깝고 슬프다. 짧은 시간 안에 변해가는 상황과 감정에 고흐가 좌절했을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져 왠지 괴로워진다.
#37세에 떠난 고흐, 그가 남긴 끝나지 않을 이야기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 ‘러빙 빈센트’는 고흐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쫓으며 전개된다. 영화는 고흐가 자살이 아니라 타살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은 미국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스티븐 나이프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의 주장에 근거한 듯 보인다. 정신병을 앓았던 고흐가 어떻게 총기를 샀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화감독 줄리안 슈나벨도 유사한 내용의 ‘앳 이터너티스 게이트’(At Eternity’s Gate)를 지난해 제75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바 있다. 학계에서는 대부분 고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유럽의 옥션 레미 르 퓨(Remy le fur)에는 고흐가 자살을 시도할 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권총이 나왔다. 2016년 네덜란드의 반 고흐 미술관의 전시에서도 다룬 바 있는 물건이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목격과 증언에 기반하면 그가 사용한 총이 맞다. 그 총을 묻은 사람이 말한 위치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총은 땅속에 50여년간 묻혀 있었기에 부식이 심한 상태다. 방아쇠는 잠겨 있지 않아 묻기 직전에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미술 공부와 일을 하면서 한때 고흐를 멀리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해야 ‘있어 보인다’는 어린 마음에서다. 해외 유수 박물관을 방문할 때마다 고흐의 그림은 발목을 잡았다. 감정을 온전히 담은 채 휘몰아치는 붓의 흔적은 보는 이를 흡입하는 능력이 있다.
고흐는 귀를 자르는 등 비극적 삶을 살며 예술혼을 불태운 화가로 알려졌다. 조금 더 깊이 보면 그는 미술사에서 전환점이 되는 작업을 펼친 천재 작가이기도 하다. 당시 주류 미술이었던 인상주의에서 중요한 재현을 거부하고 감정이나 관념을 표현하고자 했다. 유독 짧고 굵게 남은 붓질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이 표현은 훗날 독일 표현주의의 출범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37세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남긴 사람. 이제는 모두가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또 그를 사랑한다. 그러니 그가 더 이상 인간관계에서 외로움을 느끼거나 작업 방향에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별이 빛나는 밤’(1889)에서의 노란 별빛에 따듯하게 머물고 있기를 소망해 본다. 가시덤불을 걷는 고통의 삶이었으나 그대들은 내가 그린 어두운 하늘 반짝이는 별을 보라고, 그러니 힘을 내라고 나직이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봄밤이다.
김한들 큐레이터, 국민대 미술관·박물관학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