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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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권력’ 손 못대고…용두사미 끝난 블랙리스트 수사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개입 의혹 / 김은경·신미숙 불구속 기소 결정 / 조현옥·조국·임종석 소환도 못해 / 靑 윗선 못밝혀 ‘꼬리자르기’ 지적 / 환경부 의혹 제기 김태우 불기소 / 비위 폭로 등만 공무 누설 기소

검찰이 청와대 핵심 수뇌부는 건드리지 못한채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 수사를 마무리했다. 일각에서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소환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아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꼬리자르기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주진우)는 25일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전 정권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종용하고 내정자가 채용될 수 있게 개입한 혐의(직권남용, 업무방해, 강요)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불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고발된 조 민정수석과 임 전 비서실장,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전 특감반장은 무혐의 처분했다.

신미숙 靑 균형인사비서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검찰은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이 2017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15명에게 사표 제출을 종용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신 전 비서관이 청와대 내정인사를 정해 환경부 운영지원과에 통보하면 운영지원과는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한 뒤 지시를 받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됐다고 한다. 신 전 비서관은 지난해 7월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공모에서 내정자가 탈락하자 책임소재나 향후 계획 등이 담길 것을 요구하며 환경부에 경위서를 수차례 다시 제출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왼쪽)과 조현옥 인사수석이 2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문형배-이미선 신임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의 범행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신 전 비서관의 상관인 조 인사수석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신 전 비서관의 윗선이 한국환경공단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청와대 경호처와 인사수석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서울동부지법은 경호처 영장만 발부하고 인사수석실 영장은 기각했다.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 인사수석실 자료를 입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환경부 압수수색 자료와 관련자 진술로는 조 인사수석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인사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며 “조 인사수석에 대해 무리하게 수사 범위를 확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문체부 블랙리스트’를 두고 거세게 비판하며 대통령 탄핵의 원동력 중 하나로 삼은 만큼 현 정권의 도덕성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과거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이 사건이 직권남용 부분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아 당시 기소와 판결 과정에서 나온 법리들을 상당 부분 참고해 기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2월20일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장관의 임명권 행사를 감독하는 것은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업무이기 때문에 이번 환경부 사안은 문체부 블랙리스트와 다르다”고 주장한 것과 상반된다.

한편 수원지검 형사1부는 청와대 특감반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을 제기해 청와대로부터 고발당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을 재판에 넘겼다. 수원지검 형사1부는 이날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김 전 수사관을 불구속기소 했다.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

검찰은 김 전 수사관의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와 관련한 폭로 등 5개 항목에 대해서는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한다고 보고 기소 결정을 내렸다. 기소 항목은 우 대사 금품수수 의혹 등 비위 첩보, 특감반 첩보보고서, 김상균 철도시설공단 이사장 비위 첩보, 공항철도 비리 첩보, KT&G 동향보고 유출 감찰 자료 등에 대한 폭로이다.

반면 김 전 수사관이 폭로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작성,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비위 첩보 묵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일감 몰아주기 등 다른 여러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혐의가 없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했다.

 

김청윤 기자, 수원=김영석 기자pro-ver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