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싼 여야의 정면충돌이 무더기 고소·고발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패스트트랙 지정 문제가 끝나더라도 법정 다툼 등 후폭풍으로 인한 여야 갈등과 정국 경색은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가뜩이나 강대강으로 맞붙은 ‘동물국회’가 사생결단의 전쟁터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은 26일 오후 검·경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을 ‘전자 입법발의시스템’을 통해 발의했다. 여야 4당이 이용한 전자 입법발의시스템은 2005년 도입 이후 최초 사례로 기록됐다. 이로써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4법 발의가 모두 끝났다.
여야 4당과 패스트트랙 지정을 저지하려는 한국당 및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은 이날 새벽 극한 대치를 이어갔고, 특히 국회 본청 의안과 진압과정에선 ‘노루발못뽑이’(속칭 빠루·굵고 큰 못을 뽑을 때 쓰는 연장)와 해머까지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국회법 166조를 보면 ‘국회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력행위를 하거나 회의장 출입, 공무집행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돼 있다”며 “형사소송법에 의한 처벌보다 국회선진화법에 의한 처벌이 훨씬 더 무거운데도 한국당 의원들은 보좌진을 동원해 명백하게 166조를 위반하는 행위를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이날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강효상·이만희·민경욱 의원 등 18명과 보좌진 등 20명을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한국당도 맞대응에 나섰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국회 본청 의안과 앞 농성장에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민주당이) 나 원내대표를 비롯해 18명의 국회의원을 고발조치했다”며 “정말 우리도 맞고발을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일차적으로 당 소속 임이자 의원에 대한 강제추행 및 모욕 등의 혐의로 문희상 국회의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임 의원은 이날 오후 정미경 최고위원, 송석준 의원과 함께 대검찰청을 찾아 문 의장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앞서 임 의원은 이날 오전 의총에서 “문 의장에게 법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문 의장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 나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저들은 국회법을 위반했고 국회 관습법도 위반했다”며 “우리의 불법에 대한 저항은 당연히 인정된다”고 말했다.
여야 4당이 이날 오후 발의를 마친 패스트트랙 4법 상정을 위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 개의를 시도하면서 한국당과의 충돌이 재연됐다. 이 과정에서 사개특위는 공수처법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상정했다. 양대 특위 위원장들은 경위들을 동원하는 ‘질서유지권’까지 발동했다. 정개특위에선 심상정 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여야 3당 정개특위 위원 등은 전체회의 개의 예정 시간은 오후 8시 정각 회의장인 국회 본청 445호를 찾았다. 이에 회의장 입구를 봉쇄하고 있던 한국당 의원들은 여야 3당 의원들의 회의장 진입을 막아섰다. 한국당 의원들은 ‘헌법수호’, ‘독재타도’ 등의 구호를 외쳤다. 여야 3당과 한국당의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양측이 고성 속에 밀고 당기는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법안이 해당 상임위인 사개특위에 회부됐지만 패스트트랙 지정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사개특위와 정개특위가 열려서 위원 18명 중 11명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