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又誠) 김종영(1915∼1982) 선생은 한국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는 “나는 사실적인 것을 못하네”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그가 만든 공공 조형물이 단 2점인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포항 북구의 ‘포항전몰학도충혼탑’과 서울 서대문구의 ‘3·1독립선언기념탑’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 3·1독립선언기념탑은 무단 철거됐다가 복원되는 수난을 겪었다.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김종영미술관이 다음 달 23일까지 여는 특별전 ‘김종영의 공공기념조형물, 그리고 지천명’에서 자세한 사연을 만날 수 있다.
◆“민족 위해”…‘국민 성금’ 공공 조형물만 제작
3·1독립선언기념탑은 1963년 8월15일 종로구의 탑골공원에 처음 건립됐다. 제막식에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이갑성(1886∼1981) 선생과 3·1운동 당시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한국명 석호필) 박사 등이 참석했다.
김 선생은 기념탑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재건국민운동본부가 주관해 모금한 국민 성금으로 만들었기 때문. 그는 “조각가로서 민족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념탑 뒤에 독립선언문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을 새겼다.
그는 시대를 앞서갔다. 이 기념탑은 만세를 외치는 다섯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했는데 이 중 2명이 여성이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들어서야 재조명됐다. 또 다른 2명은 남성이고, 나머지 한 명은 외관상으로는 성별이 불분명하다.
16년 뒤인 1979년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시가 기념탑을 무단 철거해 삼청공원에 방치한 것.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자 서울시는 ‘공원 정비 사업’이란 석연치 않은 이유를 댔다.
김 선생은 “내 몸뚱이를 쓰러뜨린 것보다 더 한 처사”라며 “다시 세울 형편이 안 되면 그것을 녹여 토큰을 만들어 800만 서울 시민에게 한 개씩 나눠 주라”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지병이 악화해 1982년 세상을 떠났다. 기념탑은 1991년이 돼서야 서대문독립공원에 복원됐다.
포항의 전몰학도 충혼탑도 1957년 국민 성금으로 제작됐다. 전국학도호국단이 학생들에게서 모금한 성금이 재원이었다. 이 기념탑 부조에는 영혼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안내하는 상상 속 동물인 기린이 새겨져 있다.
김 선생은 지천명, 나이 오십에 접어들어 온전한 추상의 길로 들어섰다. 이번 특별전에는 두 기념탑과 관련된 그림과 사진 등 자료는 물론 그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다.
◆32년간 후학 양성… 노준 등 활약 중
그는 조각가이기 앞서 교육자였다. 1948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를 지냈다. 32년간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이들은 또 다른 후학을 길렀다.
조각가 노준(50)이 대표적이다. 서울대 조소과를 나온 그는 아기자기한 캐릭터 조각으로 유명하다. 가수 겸 작가인 나얼과 국내외에서 수차례 2인전을 열었다.
노준 작가의 작품 ‘사랑과 행복의 빛’은 지난 3월 ‘2019 아부다비 스페셜올림픽 세계하계대회’를 기념해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스페셜올림픽 공원에 설치됐다. 노 작가는 올림픽 성화를 봉송하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축구 등 올림픽 종목을 7가지 캐릭터로 표현했다. 이 캐릭터들은 UAE를 구성하는 7개의 토후국을 상징한다.
노 작가를 후원한 이화익갤러리 측은 “아부다비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각국의 작가 6명이 참여했다”며 “그중 노 작가의 작품이 이번 스페셜올림픽을 상징하는 중요한 조형물로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