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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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건강보험 재정 ‘다르게 보기’

우리나라에서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시민의 생각은 다소 복잡하다. 점차 국민건강보험(이하 건강보험)의 효과를 체감하고 혜택이 늘어나길 바라면서도 재정 적자나 보험료 인상 소식을 들으면 우선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기에 일부 언론이 비판적 기조로 편승하고 정치권마저 가세하면 시민들은 더욱 건강보험의 ‘건강’을 걱정하게 된다.

하지만 건강보험에서 재정 적자나 보험료 인상은 오히려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일일 수 있다. 지난주 건강보험공단의 작년 적자가 3조9000억원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오자, 일부 정치권은 건강보험에 마치 큰일이 난 듯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 수치에 대한 객관적 진단이 필요하다. 건강보험공단이 국회에 보고한 작년 적자는 1778억원이다. 이는 건강보험의 재정수지를 계산하는 일반적 방식에 따른 금액이다. 반면 3조9000억원은 국가회계법의 발생주의에 따른 충당부채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로 경영이 어려워진 의료기관에 진료비 청구액을 미리 지급하던 방식이 종료되면서 작년부터 나중에 지급할 충당부채가 늘어난 게 주 요인이다. 이처럼 계산방식에 따라 적자액은 달라지기에 이를 과대해석해 건강보험의 불신을 부추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
국가 운영위원장

여기서 시민들이 주목할 건 건강보험의 적자가 생긴 만큼 가입자에게 제공되는 급여 범위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작년에 선택진료제가 폐지되어 특진 비용이 사라지고, 2~3인 병실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었으며, 치매와 틀니 등 노인 본인부담비도 인하되었다. 이는 문재인케어 로드맵에 이미 담긴 내용이고, 이에 따른 적자 역시 예고된 일이다. 사실상 ‘계획된 적자’이고 ‘착한 적자’이다.

앞으로도 계속 적자로 가자고? 아니다. 건강보험료의 사회연대적 특성을 인식하자. 건강보험료는 절반은 가입자가, 나머지 절반은 기업이 납부하며, 이어 국가가 전체 보험료 수입의 20%까지 지원한다. 소득에 따라 ‘버는 만큼’ 내고 기업과 국가가 ‘함께’ 책임지며 ‘아픈 만큼’ 지원을 받는 구조이다. 혹시 의사 호주머니로 더 가는 것 아닌가 우려할 수 있지만, 문재인케어에 따라 기존 비급여가 급여로 전환되면서 공적 관리체계로 편입되고 있어 이러한 걱정은 덜어도 될 듯하다.

이제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재정이 더 필요한데 건강보험료를 올릴 것인가,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늘릴 것인가? 서민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전자이다. 노사정이 분담하는 건강보험료가 인상돼 건강보험 재정이 튼튼해지면 환자의 본인부담금은 줄 수 있기에 역설적으로 가계의 총의료비 부담이 가벼워진다.

건강보험의 재정 적자와 보험료 인상, 따갑게만 볼 일이 아니다. 적자만큼 혜택을 보고 있고 다행히 당분간은 건강보험의 누적 적립금에 의존할 수 있다. 물론 한시적이다. 2~3년 후부터는 새로이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노사가 함께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정부도 건강보험법에 정한 국고지원을 성실히 이행하자. 이 모두 민간의료보험에 의지하지 않고 건강보험으로 의료비 걱정 없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