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15세는 문신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 아닌가요?”
“하고 싶으면 해야죠. 전 해요.”
지난달 서울 한 자치구의 청소년 상담소에서 만난 중학교 2학년 이희성(가명)군이 소매를 걷어 올렸다. 팔 전체를 뒤덮은 현란한 검은 선들이 드러났다. 용 비늘과 이빨, 연꽃이 뒤엉켜 있었다. 최근 세뱃돈 20만원을 모아 문신을 했다는 이군은 “지금 와서 돈 아깝긴 한데 지우는 건 걱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군은 한 가정집에서 ‘친구가 아는 형이 소개한 형’에게 시술을 받았다. 문신을 한 이유는 멋과 함께 “약간 세 보이고 싶어서”였다.
“저희 동네가 다른 동네보다 덜 빡세요. 저희가 인맥이 약하다고요. 다른 동네 가서 창피하지 않게 지내려고 했어요.”
이군은 “아빠는 아직 문신 사실을 모르고 엄마는 좀 나쁘게 살아서 이런 걸 해도 이해할 수 있다”며 “엄마는 ‘이쁜 걸 하지, 왜 깡패처럼 이런 걸 했냐’고 하셨다”고 말했다. 28세인 이군의 형도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등에 문신을 그렸다. 수학을 ‘상급’으로 잘한다는 이군은 “평범한 학교 친구들도 제 문신을 보고 ‘개까리하다, 개간지난다’(멋있다는 은어)는 반응”이라고 전했다.
이군처럼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현란한 문신을 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특히 위기·비행 청소년을 중심으로 ‘세 보이고 싶어서’ 넓은 면적에 화려한 문신을 그려 넣는 또래 문화가 퍼지고 있다. 문제는 문신은 하기보다 지우기가 더 어렵다는 점이다. 이 청소년들이 진학·취업 등으로 문신을 없애고 싶어져도 막대한 비용과 기술적 한계에 가로막혀 후회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가치관이 여물지 않은 미성년자의 문신 시술을 막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세 보이려고’ 더 험악하게, 화려하게
문신이 자기표현 수단인 시대지만, 청소년 문신은 이른 나이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기기에 문제다. 일부 청소년이 작은 ‘패션 문신’부터 시도하는 반면, 상당수 위기·비행 청소년들은 힘에 대한 선망 때문에 사회에서 혐오스럽게 인식되는 현란한 문신을 선호한다.
서울 관악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관계자는 “위기 청소년 중에는 문신을 하면 다른 사람이 자기를 무시하지 않고 우러러보리라는 착각 때문에 어깨부터 손목까지 인어를 그리는 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10년째 보호관찰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보호직 공무원 김모씨도 “우리 반 아이 20명 중 한 13∼14명이 문신을 했다”며 “패션으로서 문신을 하는 경우는 10∼20%고 대부분은 ‘빡세 보이려고’(세 보인다는 뜻의 은어) 색을 넣고 더 혐오스럽게 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이 아이들은 ‘내가 세 보이나, 이렇게 하면 위압감을 느끼나’하면서 사회적 낙인이나 선입견을 오히려 즐기는 심리가 강하다”며 “문신 부위도 예전에는 등이나 가슴이었는데 지금은 팔, 다리, 얼굴, 쇄골, 귀밑, 목 등으로 넓어졌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문신을 과시하려는 심리가 있다 보니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고 오거나, 헬스장에서 문신이 보이도록 웃통을 벗고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운동하다 신고되는 사건도 발생한다.
김씨는 “문신 있는 애들끼리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레 술 먹고 담배 피우고 학교생활에 소홀해지며, 최악의 경우에는 절도·강도·약물로 이어지고 ‘조직’에 가입을 권유받기도 한다”며 “문신이 잘못된 또래 문화로 이어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지만 말로 계도하는 이상으로 지도하기가 힘들다”고 안타까워했다.
◆진학·취업하려니 문신이 발목 잡아
어린 나이에 충동적으로 한 문신은 ‘만시지탄’으로 이어지기 쉽다. 경찰·군인 등이 되려고 하거나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려 할 때마다 문신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주위 시선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경찰청에서는 이 때문에 2015년부터 ‘사랑의 지우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재능기부를 하는 대한피부과학회의 도움으로 청소년의 문신을 지워준다. 만19세 미만 중 재활 의지가 강하고 폭력 우려가 없는 청소년에 한해 제거 시술을 지원한다. 2015∼2018년 모두 300명의 청소년이 혜택을 봤고, 올해는 93명이 지원해 심사를 앞두고 있다.
올해 ‘사랑의 지우개’에 신청한 청소년들은 대부분 “호기심에, 아무 생각 없이 문신을 했는데 후회된다”고 토로한다. 이민영(15·가명)군은 “처음에는 작은 문신을 손목에 했는데, 주위에서 큰 문신을 온몸에 하니 멋있다고 생각돼서 호기심에 여기저기 문신을 하기 시작했다”며 “돈이 없어도 빌려서라도 문신을 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돌이킬 수 없이 후회된다”고 했다.
이군은 “주위에서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너무 힘들었고, 가장 불편했던 건 학교 다닐 때 교복을 입는 것이었다”며 “또 친구들이랑 찜질방이나 목욕탕을 눈치 보며 가는 게 미안했고, 저 자신이 너무 창피했다”고 고백했다.
김희철(가명·17)군은 “중학교 철없던 시절에 아무 생각 없이 문신을 했는데, 고등학교 입학 후 제 문신을 보고 ‘어디서 했냐, 언제 했냐’ 물어볼 때마다 관심이 불편했다”며 “고등학교에 와서 정신을 차리고 제 진로에 대해 생각한 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아 문신을 지우려 했는데 수업과 주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돈을 제대로 모으기가 힘들었다”고 적었다.
민지영(가명·18)양은 “중학교 3학년 시절 호기심으로 문신 시술을 했는데 불과 2년 만에 후회하게 됐다”며 “문신 때문에 저를 잘 모르는 친구, 선생님, 어른들께서 저를 무조건 불량 청소년으로 간주했다”고 전했다. 민양은 “무심코 했던 문신 때문에 저는 늘 ‘행실이 나쁘다, 불량하다’는 꼬리표를 뗄 수 없었고 착실히 학교생활을 하려고 해도 주변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최희선(가명·17)양 역시 “문신으로 학교도, 꿈도 다 포기해야 할 것 같아, 지울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 11시간 동안 일을 하고 있다”며 후회했다.
◆지우려면 수백만∼수억원… 제거 불가능도
문제는 문신 제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문신은 레이저로 제거하는데 보통 한 회에 50만∼2000만원이 든다. 전부 지우려면 5∼10회의 시술이 필요하다. 최소한 수백만∼수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셈이다. 워낙 아프다 보니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모든 문신을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한피부과학회 홍보이사인 김정수 한양대 피부과 교실 주임교수는 “국내 대학·개인 병원에 설치된 기계로는 노란·파란·빨간색 문신은 제거하기가 힘들다”며 “개인에 따라 3∼5회 시술 후에도 문신이 깊거나 색이 있어서 제거 불가로 판명 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최근에는 상당히 정교하고 색이 많은 문신이 늘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지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문신 제거는 찌그러진 차체를 수리하는 것과 달라, 다 없앤 후에도 피부를 자세히 보면 자국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청소년들이 검증되지 않은 업소에서 문신 시술을 할 경우 국소적 통증, 이차 감염, 몇 년 후의 이물 반응 등 부작용 위험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다. 김 교수는 “문신은 영구적 낙인으로 남을 수 있다”며 “청소년기에 문신을 하고 싶더라도 자기가 판단할 수 있고 생각이 정립된 다음인 성인기에 해도 늦지 않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청소년 문신을 규제할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관악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관계자는 “위기 청소년들은 내신에 신경 쓰지 않다 보니 선생님들이 체벌하거나 벌칙을 줘도 영향력이 없다”며 “학교 현장의 선도 기능이 상실된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자체가 불법이나 이미 관행이 된 현실이라, 미성년자 문신만 따로 관리하기가 힘들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따르면 해외의 경우 미국 오클라호마 주 등 17개 주에서는 미성년 문신 시술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27개 주는 부모 동의서가 있어야 시술이 가능하다. 영국과 프랑스도 18세 미만 시술을 금지했다. 그러나 국내에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면 오히려 위기 청소년의 욕구만 자극하리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문신이 왜 위기 청소년에게 멋있게 보이는지 원인부터 진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근본적으로는 가정 기능의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