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장기기증 희망 5년 만에 반토막…3만7000명 '발만 동동' [심층기획]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뇌사자 기증 4년 만에 500건 아래로 / 장기이식 기다리다 일 평균 5명 숨져 /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 매년 급감세 / 2013년 15만여명서 지난해 ‘반토막’ / 가족동의율도 52%서 35%로 떨어져 / 고령화 탓 이식 못하는 경우도 많아 / 생전의 본인 의사 존중 규정 만들고 / 모든 뇌사자가 기증할 수 있게 해야

A씨는 4년 전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심장이 커져 기능이 저하되는 확장성 심근병증이 원인이었다. 심장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린 지 무려 4년이 지나서야 겨우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통증이 느껴져 가슴을 부여잡거나 응급실에 실려 가는 등 위험한 순간을 몇 차례 넘기기도 했다. A씨는 이식을 받은 뒤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편안히 걷고 숨 쉬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A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4년이 걸리긴 했지만 버텨내고 새 삶을 찾은 것이다. 국내 장기이식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는 3만7000여명,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결국 이식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환자가 하루 평균 5명에 이른다. 가뜩이나 선진국과 비교해 장기기증이 활발하지 않은데, 최근 몇 년 사이 기증이 더 줄어들고 있어 환자들이 애를 끓이고 있다.

◆장기이식 기다리다 하루 평균 5명 사망

 

13일 질병관리본부와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지난해 이식 수혜자가 있는 뇌사자 장기기증 건수는 449건이다. 건수가 500건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14년 이후 4년 만이다. 2014년 446건이던 것이 2015년 501건, 2016년 573건으로 올랐으나 2017년 515건으로 감소했고, 지난해 더 줄었다. 올해 들어서도 4월 말까지 152건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146건)과 비슷하다.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도 500건을 넘기기 힘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매년 늘고 있다. 2014년 말 2만4607명에서 지난해 말 3만7217명으로 4년 새 1만2600여명이 증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루평균 대기 중 사망 환자는 2015년 3.3명, 2016년 3.6명, 2017년 4.4명, 2018년 5.2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장기기증은 뇌사·사후·생존 기증으로 구분된다. 신장이나 간 등은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일부를 떼 이식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심장이나 손(발) 등은 뇌사자에게서만 기증받을 수 있는 장기다. 생존 기증도 기증 후 건강 악화 등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길 수 있어 국가적으로 유익한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결국 뇌사자 기증이 많아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만명당 뇌사 기증률은 8.66명으로 스페인(48명), 미국(33.32명), 영국(24.52명) 등 주요국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조원현 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은 “장기기증이 없으면 장기 수요와 공급에 심각한 불균형이 생기게 된다”며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은 장기를 팔아 돈을 마련하고, 부자들은 장기를 사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려 하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기기증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해야

 

뇌사 장기기증이 감소하고 있는 것은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유교적 관념 탓에 시신에 또다시 칼을 댄다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장기기증 희망자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는 2013년 15만4798명, 2014년 10만8898명이던 것이 2016년 8만5005명, 지난해 7만763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생명나눔 인식조사’를 보면 장기기증 의향이 없는 이유로 ‘인체 훼손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응답이 무려 33%에 달했다. ‘막연히 두려워서’가 30.4%, ‘절차 이외의 정보(사후처리·예우 등)가 부족해서’가 16.5%로 뒤를 이었다.

가족 동의율도 낮아지고 있다. 생전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했더라도 가족의 동의를 받아야만 장기기증을 할 수 있다. 기증적합 환자 가족의 기증 동의율은 2014년 52.1%였던 것이 지난해 35.1%로 17%포인트나 감소했다.

 

고령화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뇌사가 되는 가장 흔한 원인이 교통사고나 뇌혈관질환인데, 이들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기증자 평균 연령은 2013년 44.5세에서 2017년 48.2세로 상승했다. 고령일수록 장기 기능이 떨어져 이식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장기기증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과 장기기증에 대한 긍정적 인식 제고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족 동의가 있어야만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규정이 우선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본인이 생전에 밝힌 장기기증 서약은 의미 없고, 최종 결정이 가족의 손에 달린 것이다. 양철우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은 “주변에서 왜 장기기증을 하느냐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가족들이 기증을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본인 생전에 장기기증 의지 서명이 있으면 존중해주는 법·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뇌사자가 장기기증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스페인에서는 뇌사자가 생전 장기기증을 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거부의사를 밝혀놓지 않으면 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기증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뇌사뿐 아니라 심정지 상태에서도 장기기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외국의 경우 심정지(순환정지) 상태에서도 장기기증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일부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환자들도 기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꾸준한 홍보와 교육을 통해 장기기증과 생명나눔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근본적인 과제다. 양 센터장은 “뇌사에 빠져 장기기증을 하거나 병으로 이식 받는 일을 특별한 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어찌보면 자신의 일이 될 수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의지를 가지고 홍보, 시스템 구축, 장기기증자 예우 확대 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장기기증은 국가권력이나 돈이 있다고 강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단기간 실현될 수는 없지만 장기이식의 장점, 기증의 필요성을 인지해 장기기증 희망 등록이 늘고, 궁극적으로 실제 장기기증자가 증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전이 우려 없는 암 환자도 ‘생명나눔’ 가능

 

생명나눔에 참여하고 싶다면 생전에 신청서를 작성하고 가족들에게 뜻을 분명히 밝혀 둬야 한다. 불의의 사고로 뇌사에 처할 경우 조직적합성이 맞는 다른 환자에 장기가 전달돼 최대 9명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물할 수 있다. 장기기증 절차와 궁금증을 Q&A로 알아봤다.

 

Q: 장기기증 신청은 어떻게 하나

 

A: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나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등을 방문해 기증희망자 등록신청서를 작성하거나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기증희망서를 등록하면 된다. 해당 기관에 전화로 등록신청서를 요청해 작성한 뒤 우편이나 팩스로 보내는 방법도 있다.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는 부모 등 법정대리인 동의가 있어야 한다.

 

Q: 뇌사 상태란 무엇인가

 

A: 각종 뇌질환이나 사고 등으로 전체 뇌 기능이 손상되고, 호흡 및 순환중추(심장과 혈관 운동을 지배하는 중추신경) 기능까지 상실해 회복이 절대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인공호흡기를 부착해도 이르면 수일, 길어도 2주 내에 심장 박동이 정지된다. 법에 뇌사판정 기준이 명시돼 있으며, 전문가로 구성된 뇌사판정위원회에서 최종 판정한다. 이와 비교해 식물인간은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지 않아도 호흡, 맥박, 체온, 혈압이 유지되는 상태로 장기기증을 할 수 없다.

 

Q: 어떤 장기들을 기증할 수 있나

 

A: 뇌사상태에서는 신장, 간, 심장, 폐, 췌장 및 췌도, 소장, 손(팔), 위장·십이지장·대장·비장(소장과 동시 이식일 경우만 해당), 각막이 가능하다. 사망한 뒤라면 24시간 이내에 각막, 뼈와 연골, 심장판막·심낭, 인대, 피부, 혈관 등을 적출해 조직 손상으로 장애가 있는 환자의 재건을 도울 수 있다.

 

Q: 암일 때도 장기기증이 가능한가

 

A: 피부암, 자궁암이나 자궁경부암,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은 뇌종양, 암 치료 후 5년 이상 지난 상태로 재발이 없는 경우 장기기증이 가능하다. 악성종양, 전이 우려가 있는 암, 패혈증, 에이즈·B형 간염 등 감염성 질환, 치매 등의 질환이 있으면 기증을 할 수 없다.

 

Q: 기증자 사후 처리는 어떻게 되나

 

A: 시신은 장기 적출 후 본래 모습으로 최대한 복원해 가족에 인도한다. 뇌사기증자 유가족에게는 장제비 등 소정의 지원금이 지급된다. 유족들은 사회복지사들과의 상담, 기증자 유가족모임 등을 통해 정서적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