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맥 없이 우뚝 솟은 봉화산 같은 존재입니다.”
23일 서거 10주기를 맞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자주 했던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외쳤고 지역주의와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도전을 계속했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인 종로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부산에 출마한 그를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라 불렀다. 그렇게 한국 사회의 견고한 벽을 뛰어넘으려는 그의 열정은 우리 사회에 ‘노무현 정신’을 남겼다. 노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대화와 타협은 현 정치권의 거센 막말 속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만, 지역주의 타파와 탈권위주의 정신만큼은 여권에 계승돼 이들이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일부 정책에 반영됐다는 평가다.
◆‘노무현 정신’이 남긴 변화
22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부 개혁법안은 참여정부가 싹을 틔웠다가 실패한 것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이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검찰 개혁에 대한 의지로 2004년 11월 공수처 설치 법안을 발의했지만 야당의 거센 반발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 공수처 법안은 ‘동물 국회’를 뚫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상태다.
노 전 대통령은 보수 텃밭이었던 부산의 문을 두드린 끝에 2004년 열린우리당 최초로 부산 동구에서 당선됐다. 지역주의에 균열을 낸 그의 노력이 마중물이 돼 현재 부산을 지역구로 한 민주당 의원은 6명으로 늘었다. 민주당 김성환 의원은 “그분(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져서 지키려고 했던 지역주의 타파와 국가 균형발전의 성과가 이제야 조금씩 성과가 나고 있다”며 “그 정신과 가치를 이어가려는 시민이 늘어난 것도 성과”라고 말했다.
◆노무현의 사람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시대 변화를 꿈꿨던 사람들도 상당수 정치권에 남았다.
‘친노’(친노무현) 세력은 한때 ‘폐족’으로 불리며 정치적 궁지에 몰렸지만 부활에 성공했다. 참여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친노 좌장이 돼 노무현의 사람들을 이끌고 있고,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인 민주당 강병원, 권칠승, 김성환, 김정호, 김종민, 박재호, 서영교, 윤후덕, 전재수, 전해철, 최인호, 황희 의원 등도 20대 국회에서 활동 중이다. 김영배, 민형배, 백원우, 송인배, 윤건영 등도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하며 다시 청와대에서 일했다.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여권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며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10주기 추도식…고위인사 총집결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리는 추도식에는 여권 고위 인사들이 총집결한다. 민주당 이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등 의원 60여명과 이낙연 국무총리,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등 정부 측 인사들이 참석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8주기 추도식에 마지막으로 참석해 “노무현 대통령님, 그립고 보고 싶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22일 모친상을 당한 유시민 이사장과 항소심 재판 일정이 있는 김경수 경남지사는 추도식에 불참할 예정이다.
이현미·이귀전·최형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