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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역사 - 5월27∼6월2일] 동로마 멸망이라는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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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5월29일 동로마가 멸망한 것은 대체로 어두운 사건으로 자리매김돼 있다. 더러는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암담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서로마가 5세기에 야만족인 게르만족에게 망한 것도 모자라 동로마는 아예 이슬람의 오스만제국에게 망하다니….

하지만 거기엔 ‘로마’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 서양의 시각이 깔려 있다.

그것이 곧잘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표기되는 것도 그런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잃은 자보다는 뺏은 자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의 공식을 따른다면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십자군의 ‘예루살렘 탈환’이라는 표현과는 대조된다. ‘예루살렘 탈환’이라면 예루살렘이 십자군의 것이었던가. 아니다. 거기에도 유럽 중심의 사관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것이다.

막상 예루살렘의 토박이였던 유태인은 그 ‘탈환’ 당시 무슬림보다도 더 참담하게 십자군에게 도륙을 당했다.

십자군은 차라리 무슬림은 그냥 죽여도 유태인은 내장을 파내거나 창고 같은 데 가둔 채 불을 질러 죽였다.

기독교 세계로서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억울해할 만한 명분도 없었다. 콘스탄티노플이 오랜 기간에 걸쳐 오스만제국에게 포위돼 마침내 이슬람의 바다에 뜬 섬처럼 되는 동안에도 서유럽 세계는 방치하다시피 했다.

유럽은 당시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만이 관심사였다. 공교롭게도 백년전쟁도 1453년에 종결되면서 유럽은 중세를 벗어나 근세로 접어든다.

흑해가 이슬람에게 막힌 서구는 대서양을 건너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도 했다. 동로마의 몰락으로 그리스 지식인과 문헌이 서구로 나가 르네상스를 불러온 것도 새 시대의 경사였다.

양평(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