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생산과 관련해서 21세기가 20세기와 크게 다른 점 하나를 꼽으라면 모든 사람들이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서 카메라란 스마트폰에 달린 카메라를 말한다.
한때 애플은 '세상에서 사진을 가장 많이 찍는 카메라는 아이폰’이라고 자랑했을 만큼 스마트폰은 디지털 카메라를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로 이제 사람들은 항상 카메라 렌즈 앞에 선다. 셀카는 물론이고, 친구, 가족, 연인들은 서로서로의 모습을 찍어주고 간직한다. 인류 역사에서 평범한 개인들의 이미지가 이렇게 많이 기록되고 공유된 적은 없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에 민감해졌고, 어떤 각도로 카메라를 향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자신이 가장 멋있게 나오는지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거의 예외없이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짓는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자신만의 ‘사진 잘 나오는 공식’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기도 한다. 어떤 모임, 어떤 장소에서 찍어도 사진 속에서 항상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친구들을 다들 한두 명씩은 갖고 있을 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지을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으니까’는 답이 될 수 없다. 19세기에 사진기가 발명된 후로 찍힌 초기의 사진들 속에서는 웃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20세기 초까지 사진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진 속 인물들은 무표정이다. 물론 여기에는 기술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초기에 사진을 한 장 찍으려면 카메라 앞에서 몇 십 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있어야 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미소를 짓다가는 얼굴 근육에 경련이 났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화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진을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찍을 수 있게 된 후에도 아주 오래도록 사람들은 사진기 앞에서 웃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이라고 해서 사진에 좋게 남고 싶지 않았을 리는 없다. 평생 한 장 찍힐까 말까하는 사진인데 좋게 보이고 싶었던 것은 당연하다. 다만 웃는 모습은 좋은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웃지 않았던 것이다.
웃는 모습이 좋지 않다니?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미술사를 거슬러 올라가봐야 한다. 우선 초상화의 역사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할 만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거의 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관공서에 걸려있는 초상 속 대통령은 무표정에 가까운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같은 논리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관대작들은 근엄한 무표정이 자신을 가장 돋보이게 한다고 믿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문화와 상징을 연구하는 크리스티나 코체미도바 교수는 웃음은 오랫동안 “정신병을 앓고 있거나, 외설적이거나, 시끄럽거나, 술에 취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설명한다.
옛날 사람이라고 평소에 웃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그림에 웃는 모습, 특히 치아가 드러나도록 웃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렇게 미성숙한 인격, 천박한 성격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도 술을 들이키는 사진을 SNS에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지 않는 것처럼, 웃는 것과 웃는 얼굴로 그림이나 사진에 등장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유럽 미술사에서 초상화에 웃는 얼굴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7세기에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던 프란스 할스의 작품에서였다.
하지만 그가 그린 초상화 중에서도 중상류층 사람들은 거의 웃지 않거나, 웃어도 희미한 미소만을 지을 뿐인 반면, 술 취한 혼혈인, 집시, 어린 소년들은 치아를 내보이며 웃고 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 후기 화가인 강세황이 그린 자화상은 엄격한 표정의 양반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비슷한 시기의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 속 평민들의 얼굴에는 간간이 웃음이 등장한다.
하지만 같은 그림 속에서도 웃고 있는 건 철없는 소년들이거나, 웃통을 풀어헤치고 마당에서 일하는 하인, 혹은 소작농이다. 그들을 지켜보는 훈장이나 주인 같은 양반들은 웃지 않는다.
그럼 이렇게 천시되던 웃음은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대접을 받기 시작했을까? 몇 해 전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미국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교 앨범 사진 3만7000여장을 모은 후, 10년 단위로 남녀학생의 평균 얼굴을 추출해내서 변화 추이를 살핀 것이다. 연구 결과를 보면 1900년대 초만 해도 학생들은 입을 꼭 다물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1940년대에 들어서면 여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띤 얼굴로 등장하고, 남학생들도 1970년대부터는 이를 드러내며 웃기 시작한다.
앨범에서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웃기 시작하는 시점이 더 늦은 이유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연구 주제가 되겠지만, 그에 앞서 사진 속, 그림 속에서 웃고 있는 것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벗어났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시점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그런 변화가 생겼을까?
앞서 언급한 문화학자 코체미도바에 따르면 그 변화는 사회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기보다는 특정 기업의 의식적인 노력과 홍보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 기업은 바로 코닥필름이다.
20세기 전반기는 코닥이 미국 필름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시기였다. 부자들이나 탈 수 있었던 자동차를 모델 T를 통해 대중화했던 포드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코닥은 19세기까지만 해도 부자들이나 찍을 수 있던 사진을 대중화했다.
걸림돌은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사진이 찍힌다는 것은 특별히 즐거운 경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것만큼의 괴로움은 아니겠지만, 특별히 즐거울 것도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제품을 성공시키려면 좋은 기능만으로 안 되고, 반드시 사용자의 행동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구글 글래스가 실패했던 것도,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못했던 것도 바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코닥이 맞닥뜨린 문제였다.
하지만 코닥에게는 특별한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미국의 광고산업이다.
당시 미국의 광고업계는 공포와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해서 물건을 파는 기존의 광고기법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행복감과 즐거움을 약속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었다. 특정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메시지 대신, 사용하면 행복해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식이었다. 이런 새로운 광고의 흐름에 따라 코닥은 ‘사진 속의 인물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전략을 세웠고,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사진 속 인물이 활짝 웃고 있는 광고였다.
1900년대 중반까지 몇 십 년에 걸쳐 당대 최고의 잡지들에 광고를 퍼부었던 코닥은 그렇게 서서히 웃음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바꿔갔고, 그 효과는 버클리의 연구에서 보듯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타났다.
지금은? 단체사진을 찍을 때 무표정하게 있으면 “화났느냐”는 말을 듣기 십상이고, 웃지 않는 사진 밑에는 “무슨 일 있느냐”는 댓글이 달린다. 과거에는 중립적이었던 무표정이 이제는 분노와 슬픔으로 해석될 만큼 웃음이 흔해진 세상이다. 사진 속 인물의 진짜 감정이라는 보장은 없다.
박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