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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해병대기(旗) 없는 현충일 추념식되나

해병대기

“군대의 기(旗)는 군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해병대원들을 기리는 자리에 해병대기가 없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6일 국립서울현충원서 열리는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는 해병대기(旗)를 볼 수 있을까. 현충일 추념식에 해병대기가 등장한 것은 3년 전 행사 때가 유일했다.

 

5일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현충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충일이나 국군의 날, 국빈 방문 등의 경우 현충원서 진행되는 참배행사에는 기수단이 도열한다. 이때 등장하는 기는 모두 6개로 태극기와 국방부기, 합동참모본부(합참)기, 육·해·공군기가 양쪽으로 열을 맞춘다. 그러나 올해로 창설 70주년을 맞는 해병대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지난해 6월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왼쪽에는 태극기와 합참기, 해군기, 오른쪽에는 국방부기와 육군기, 공군기가 배치돼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현충원 측이 밝힌 해병대기 제외 이유는 ‘균형이 맞지 않아서’다. 추념식 등의 행사에는 현충탑을 보는 기준으로 왼쪽에 위치하는 열에 태극기가 위치한다. 이때 태극기를 중앙에 두기 위해 태극기를 중심으로 양쪽에 1기씩을 배치하는데, 반대편인 오른쪽 열에도 서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같이 3개의 기를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현충원 운영예규인데, 예규에는 행사기수단 배치에 대해 태극기, 국방부기, 합참기, 육군기, 해군기, 공군기 및 기호위병 4명으로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충원 관계자는 “(현충원 운영예규는) 국방부 훈령인 군기령에 따라 육·해·공군기만 (참배행사에)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군기령에서는 해병대기를 군기(軍旗)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해병대는 해군에 포함되도록 한 국군조직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28일 제70주년 국군의날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국방부 의장대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오른쪽의 붉은색기가 해병대기.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러나 법령으로만 해병대기의 제외 사유를 따지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군기를 1열로 배치할 때다. 국군의 날 공식행사나 청와대 국빈방문과 같은 행사에서 기수단이 1열로 도열하는 경우 태극기를 중심으로 양쪽에 기 3개씩을 배치하는데 이때는 해병대기가 포함된다. 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부터 공군기, 육군기, 국방부기, 태극기. 합참기, 해군기, 해병대기 순으로 배치된다. 이 경우에는 기의 개수를 홀수로 맞춰야 태극기가 중앙에 위치할 수 있기 때문에 해병대기를 두는 것이다.

 

‘1열7기’ 기수단에서 해병대기가 빠질 때도 있다. 지난 3일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장관 대행의 방한 때 서울 용산구 국방부 연병장에서 열린 환영 의장행사에서는 해병대기 대신 성조기가 들어갔다. 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부터 해군기, 합참기, 성조기, 태극기, 국방부기, 육군기, 공군기 순으로 배치됐다. 상황에 따라 해병대기가 들어가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셈이다.

 

현충원 운영예규에 나와있는 기수단 구성도. 국립서울현충원·안규백의원실 제공

한 해병대 예비역 중령은 “해병대기가 짝수, 홀수를 맞추기 위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게 서글프다”면서 “현충원에 모셔진 해병 선배님들께 참 부끄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현충일 추념식에 해병대기가 등장한 적도 한차례 있었다. 2016년 현충일이다. 이때 2열 기수단에는 기존의 합참기가 빠지고 해병대기가 들어갔다.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 해병대 예비역 단체 관계자는 “수년간 수차례에 걸쳐 해병대기를 넣어달라고 민원을 넣으니까 현충원 측에서 합참기를 빼고 해병대기를 넣었다”며 “그런데 이튿날인가부터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시 기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자꾸 홀수, 짝수에 연연하는지 모르겠다. 법에도 홀수, 짝수를 맞추라는 얘기는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 2016년 6월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각계 인사들이 현충탑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에 해군기와 국방부기, 해병대기가 배치됐다. 현충일 추념식 행사에 해병대기가 배치된 것은 이날이 유일했다. 국립서울현충원 제공

실제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에 따르면 기의 수가 홀수인 경우에는 국기를 중앙에, 그 수가 짝수인 경우에는 앞에서 바라보아 왼쪽 첫 번째에 게양하도록 돼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충원의 묘비 표시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해병을 해군에 포함시켰지만 1997년 5월부터 해병대로 표시하고 있다”며 “묘비에는 해병과 해병대를 분리해 표시하면서 해병대기만 제외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현충원 측은 해병대의 특수성과 많은 전사자가 영면해 있는 점들을 고려해 해병대 관련 행사에는 해병대기를 포함해 기수단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충일 추념식 등의 행사에서는 여전히 포함시키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립서울현충원 군별 안장현황. 국립서울현충원·안규백의원실 제공

이에 대해 안규백 위원장은 “오와 열을 맞추는 형식·절차에 얽매이는 것은 매우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해병대는 법적으로 해군에 포함돼지만 이미 2011년에 인사권과 재정권이 독립됐고, 해병대사령관이 해군총장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 범위 내에서 독자적인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해병대기를 각군기와 함께 게양함으로써 해병대대원들의 명예를 지키고 사기를 앙양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 군의 합동성을 강화하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