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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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살라미 전술과 갓끈 전술

벼랑끝 전술·치킨게임 전술 등 / 북한은 온갖 전략·전술의 나라 / 당면 목표는 한·미, 한·일 이간질 / 모르면 바보, 알고 추종하면 역적

원로 교수 엄정식은 학창 시절 ‘인생에 대해 논하라’라는 시험에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양파 하나를 달랑 그려 넣었다. 양파 답안지로 뜻밖에 A+를 받은 그는 훗날 한 시대를 풍미하는 철학자가 됐다. 북한을 들여다본 지 40년 가까이 됐지만 북한은 여전히 양파 같다. 까도 까도 껍질만 나와 도대체 속에 뭐가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북한을 탐구하다 보면 무수한 ‘전술’ ‘전략’이 나온다. 툭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협박하는,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벼랑끝 전술’부터 자국을 방문한 관광객 등을 붙잡아두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인질 전술’, 물불 안 가리는 ‘치킨게임 전술’, 협상 내용을 잘게 쪼개 하나하나 차례로 성취하는 ‘살라미 전술’, 한·미동맹과 한·일 관계 중 하나만 파탄 내면 대남 공산화는 절로 된다는 ‘갓끈 전술’이 대표적이다.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북한은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 내전을 거치면서 활용했던 ‘담담타타(談談打打) 타타담담(打打談談)’ 전술도 여전히 가동 중이다. 세가 불리한 때에는 전략적 방어와 전술적 공격이라는 저자세의 이중전술인 담담타타로 나오고, 세가 유리한 때에는 전략적 공격과 전술적 방어라는 고자세의 이중전술인 타타담담으로 나오는 속임수 평화 전략이다. 해체 위기에 몰린 마오 무리를 기사회생시킨 두 차례의 국공(국민당·공산당) 합작은 전형적인 이 전술의 일환이다. 여기에 말려들어 대륙을 잃은 장제스(蔣介石)는 훗날 다음과 같이 분석하며 통탄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전세가 불리하면 반드시 평화회담을 제의해 온다. 그러나 실력이 생기면 평화회담을 파기하고 다시 공격을 감행한다. 그들이 우리와 평화회담을 하는 때에는 그들이 은밀히 무장투쟁을 준비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공격과 평화회담을 동시에 병행함으로써 우리의 힘을 분산시키고 저들의 힘을 집결하며, 우리의 투지를 약화시키고 저들의 힘을 증강하는 데 최고도의 효과를 거두려고 한다.”

북한은 최근엔 자신들이 ‘미친×’이어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관측을 의도적으로 퍼트려 상대방을 협상장으로 이끌어내는 ‘광인(狂人)전략’까지 구사하고 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북베트남과의 평화회담을 위해 핵전쟁 경계령을 내린 데서 유래한 전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툭하면 이 전략을 구사한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 자신의 집무실 책상 위 핵 단추 크기와 개수를 가지고 협박하던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핵 협상 국면에서 북한이 다시 꺼내든 전술은 살라미 전술이다. ‘살라미(salami)’는 크기가 매우 커서 얇게 썰어 먹어야만 하는 이탈리아 소시지 이름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군 점령 하의 헝가리에서 공산당 지도자 마차시 라코시가 살라미를 자르듯 적을 분열시킨다는 의미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17%밖에 득표하지 못한 공산당은 소련의 힘을 등에 업고 내무장관직을 요구한 뒤 비밀경찰 조직을 만들어 협박, 참소, 심문, 고문으로 정적을 억압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핵 협상에서 단계적 해법을 고집하는 게 전형적인 살라미 전술의 일환이다. 한국 정부가 중재안으로 제시한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도 결국은 북한의 살라미 전술을 돕는 꼴이다. 북핵 제거에 사활을 건 동맹국 미국이 달가워할 리 없다.

북한이 또다시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전통적인 한·미·일 이간책인 갓끈 전술이다. 황장엽에 의하면 이는 김일성이 1972년 김일성정치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선보인 전술로 “사람의 머리에 쓰는 갓은 두 개의 끈 중에서 하나만 잘라도 바람에 날아간다. 남조선 정권은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끈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남조선 정권은 미국이라는 끈과 일본이라는 끈 중에서 어느 하나만 잘라버리면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강조한 데서 유래됐다. 북한과 남한 내 종북 성향의 좌파는 자나 깨나 반미는 물론 반일 운동에 혈안이 돼 있다. 북한의 이런 전략·전술을 모르고 추종하면 바보이고, 알고 추종하면 역적 아니면 간첩이다.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