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새벽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장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2019 폴란드 U-20 월드컵 8강전. 경기는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 연장으로 향했고, 연장전에서도 치열한 일진일퇴가 벌어졌다. 이미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탄탄하다고 평가받은 세네갈의 포백 수비를 상대로 두 골을 뽑은 상태. 이 놀라운 한국 U-20 대표팀의 진군을 18세의 어린 선수가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바로 이강인(18·발렌시아)이다. 연장 전반 5분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중원에서 이강인의 발을 떠난 패스가 세네갈 장신 수비수 세 명 사이를 뚫고 조영욱(20·FC서울)의 발 앞까지 이어진 것이다. 조영욱은 이 킬 패스를 받아 논스톱 슈팅을 날렸고 이어 그림 같은 골이 속시원하게 터졌다.
아쉽게도 이 득점은 결승골이 되지 못했다. 한국이 연장 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내준 탓이다. 그러나 이강인을 비롯한 태극전사들은 뜨거운 투지로 승부차기에서 3-2로 승리를 잡아냈다. 경기 뒤 승부를 지켜본 모든 이들은 이강인을 이 경기의 수훈갑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이 경기에서 세 번째 골 외에 앞선 두 골에도 모두 관여했다. 후반 14분 이지솔(20·대전)이 VAR 판독 끝에 얻어낸 페널티킥을 이강인이 깔끔하게 성공시켜 첫 골을 뽑아냈다. 후반전 추가시간에는 자로 잰 듯한 코너킥을 올려 이지솔의 극적인 동점골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연장 후반 초반 수비수 김주성(20·FC서울)과 교체돼 그라운드를 빠져나갈 때까지 110여 분 동안 그는 자신이 그라운드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임을 유감없이 보여줬고, 끝내 ‘비엘스코비아와의 기적’을 연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사실 이강인의 이 대회 활약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는 이미 세계 최고 리그인 스페인 라 리가에서 명문 발렌시아의 1군 유니폼을 입고 당당히 데뷔에 성공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경쟁팀의 최고 유망주들보다도 2~3세 빠른 18세에 만들어낸 쾌거로 이강인이 현지에서 얼마나 기대를 받는 선수인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적 관련 전문사이트 트랜스퍼마켓이 평가한 이강인의 몸값은 벌써 750만유로(약 100억원)에 달한다. 이번 U-20 월드컵 4강 경쟁팀인 우크라이나, 에콰도르 등은 물론 프랑스,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축구강국의 에이스들과 비교해도 3~4배 이상 높은 액수다.
다만 시즌 중반 발렌시아와 정식 1군 계약을 맺은 뒤로는 그라운드에서 그의 활약을 보기 쉽지 않았다. 발렌시아가 리그 막판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티켓 경쟁을 본격화하고 유로파리그, 스페인 국왕컵 등의 우승 도전에도 나서면서 데뷔 초년생에게 출장기회가 제대로 부여되지 않은 탓이다. 결국 ‘유럽 정상급 슈퍼 유망주’의 실력을 두 눈으로 확인할 기회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오지 않았다.
소속팀의 벤치에만 앉아 펼쳐내지 못했던 재능을 이강인은 이번 대회에서 마음껏 입증하는 중이다.
이강인의 실력은 12일 예정된 에콰도르와의 4강전에서도 또 한 번 발휘될 가능성이 크다. 조별예선 대활약에 이어 16강, 8강전을 거치면서 경기력이 점점 더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팀에 뒤늦게 합류해 포르투갈과의 첫 경기에서는 다소 동료들과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토너먼트 이후로는 팀의 지휘관으로 완전히 올라섰다. 4강전에서도 8강전 연장전에서의 골과 같은 동료와의 콤비플레이를 또 한 번 기대해볼 만한 이유다.
이번 U-20 월드컵 대활약으로 유럽 현지에서의 그에 대한 관심 역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스페인 언론도 세네갈전 이강인의 활약에 “그는 진정한 예술가였다”고 보도하는 등 극찬 일색이어서 이번 U-20 활약은 차기 시즌 그의 팀내 입지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