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ASF)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가 야생 멧돼지 포획을 강화하기로 하자 동물보호단체가 멧돼지의 무분별한 사살·포획을 중단하라며 맞서고 있다. 현재 동아시아에 번진 ASF는 멧돼지가 주범이 아닌 데다 인위적인 포획은 멧돼지 행동권을 더 넓힐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10일 야생동물연합은 성명을 내고 “아시아에 퍼지고 있는 ASF가 사람에 의해 전파되고 있는 것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멧돼지를 전파 원인으로 몰아붙이고 애꿎은 멧돼지 포획이 증가하고 있다”며 “유엔식량농업기구(FAO)도 가축과 축산물 방역을 권고하지 멧돼지 포획을 언급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2014∼2018년 각국의 사육돼지와 멧돼지 발병건수를 보면, 리투아니아는 멧돼지 발병건수가 6024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사육돼지 발병건수는 118건에 머물렀다. 반면 루마니아는 멧돼지 155마리에서 발병했는데 사육돼지는 1073건으로 가장 많은 발병건수를 기록했다. 멧돼지의 발병이 반드시 사육돼지 발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멧돼지에 의한 전파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포획에 나설 경우 도리어 확산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개체 수를 낮추기 위해 사냥, 포획, 유인을 할 경우 위협을 느낀 멧돼지가 행동반경을 넓히고 야간행동 빈도를 늘려 질병 확산에 더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범준 야생동물연합 국장은 “멧돼지를 포획하겠다고 하는 것은 나중에 확산됐을 때 방역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구실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은 이런 주장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현재 정부 대책은 북한에서 내려오는 멧돼지 개체에 대해서만 포획을 강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원화 과학원 생물안전연구팀장은 “전 세계적으로 아프리카는 진드기, 유럽은 잔반 급여가 ASF 원인으로 드러났을 뿐 멧돼지가 사육돼지 감염을 일으킨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없다”며 “보통 야생 멧돼지가 ASF에 감염되면 영역을 공유하는 멧돼지들은 모두 죽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그대로 놔두는 안정화가 기본원칙”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만, 멧돼지가 위험요인 중 하나인 만큼 (감염이 우려될 경우) 포획틀 등은 사용할 수 있으며, 이런 방침은 표준 매뉴얼로 준수되고 있다”고 전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