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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당신이 자랑스럽다…난 ‘이희호의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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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톡] 이희호 여사 별세

10일 97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부인이자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이기 전에, 김 전 대통령과 영욕의 반세기를 함께했던 민주화 투쟁 ‘동지’이자 ‘조언자’였다. 김 전 대통령도 자신을 ‘이희호의 남편’이라고 말했을 만큼 아내를 동지이자 동업자로 여겼다.

 

◆ 김대중에게 이희호는…‘존경’ 그 자체

 

1951년 부산 피난 중, ‘면우회’라는 대학생 모임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이 여사를 처음 만났다. 이전해(1950년)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이 여사는 미국 유학 준비 중, 한국전쟁 발발로 부산에 피난 왔다가 친구 소개로 김 전 대통령을 봤으며, 대한여자청년단 활동으로 곧잘 군복 염색한 옷을 입고 다닌 이 여사의 모습을 김 전 대통령은 여성스럽다고 느꼈다.

 

1993년 8월1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담소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1961년 서울 종로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났을 때, 빈털터리였던 김 전 대통령과 달리 이 여사는 미국 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미래의 여성 지도자였다. 하지만 이 여사는 교만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자기주장에는 언제나 당당하면서도, 마음을 열어 남을 배려했다며 이 여사가 진보적인 시각을 지니고 시국 보는 눈이 정확했다고 기억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내란음모죄로 1981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자, 무릎 꿇은 채 ‘하느님 뜻대로 하소서’라며 울부짖은 이 여사가 존경스러웠다고 말했다. 가족의 믿음과 사랑이 없었다면 20년 넘게 지속된 고난을 이겨내지 못했을 거라면서, 그 중심에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다고 김 전 대통령은 강조했다.

 

국내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탄원서를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던 김 전 대통령은 1983년 샌프란시스코 강연에서 “아내가 없었다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며 “오늘 내가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내 아내 덕분”이라고 ‘이희호의 남편’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했다.

 

김 전 대통령은 2008년 아내의 자서전 ‘동행 :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출판기념회에서 이 여사를 극찬했다. 그는 “결혼 46년 동안 제대로 가사를 도와준 적이 없었다”며 “제가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도록 힘을 준 것도 아내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을 때 힘과 능력을 주고 내조를 잘해주었던 이도 아내”라고 밝혔다. 2009년 어느 날 남긴 일기에서는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을 것”이라고도 존경을 표했다.

 

1979년 12월8일 긴급조치해제에 따른 구속자 석방과 아울러 당국의 '보호'에서 풀려난 김 전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희호에게 김대중은…‘모험’이었지만 ‘운명’과 같아

 

1962년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이 여사는 주위의 거센 반대를 이겨내야 했다. 노모와 이전 아내 사이에서 얻은 두 아들 그리고 셋방에 앓아누운 여동생까지 있었기에 김 전 대통령과의 결혼은 ‘모험’이었다. 그는 당시를 문밖에서 운명이 노크했다고 떠올렸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꿈이 컸기에, 그의 밑거름이 되고자 했던 생각으로 결혼을 결심했다.

 

이 여사는 대선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패하고 야당 의원 탄압이 시작되자 해외 망명을 결심한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서 “현재로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으니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며 “특히 (박정희 정부가) 미워하는 대상이 당신이므로 더 강한 투쟁을 하시고…”라고 독려했다. 그는 내란음모죄로 김 전 대통령이 수감됐을 때는 편지(649통)와 책(600여권)으로 헌신적인 옥바라지도 했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장례에서 이 여사는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한 마지막 편지를 썼다. 그는 편지에서 “같이 살며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지만, 너그럽게 용서하고 아껴줘 고맙다”며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어려움을 잘 감내하신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쓰여 줄 것을 믿는다”며 “자랑스럽다”고 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