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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지는 '공천 물갈이' 목소리… 한국당, 'Again 2000' 가능할까

'이기는 공천' 과제 직면… 황교안의 선택은 / 21대 총선 공천 두고 당 안팎서 압력 / 이회창, '개혁 공천' 바탕으로 제 1당 만들어 / 박근혜, '공천 불개입' 원칙으로 위기에서 당 구해

‘2000년 이회창의 길과 2004년 박근혜의 길‘ 

 

자유한국당 안팎에서 내년 21대 총선 공천을 놓고 ‘개혁 공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공천의 칼자루를 쥔 황교안 대표에게 2가지 길이 제시되고 있다. 두 가지 길 모두 현역 의원을 대폭 물갈이하며 보수의 새 얼굴을 등용한 공천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당 대표의 공천권 행사 여부가 큰 차이점이다. 총선 승리로 2022년 대권 승리의 발판을 새기고자 하는 황 대표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물갈이 폭 커질 것”, “대대적인 공천 물갈이가 흐름”…공천 물갈이 여론 높아지는 한국당

 

“저희가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당했고 그의 뿌리가 되는 2016년 20대 총선 공천에서 많은 후유증을 겪었기 때문에 현역 의원들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역의 물갈이는 과거보다도 사실은 적지 않습니다.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물갈이 폭도 크게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공천 물갈이’로 대표되는 개혁 공천의 목소리는 지난 6일 한국당 신상진 의원의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롯됐다. 신 의원6은 한국당 신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21대 공천룰의 뼈대를 만들고 있다. 신 의원의 공천 물갈이 발언이 곧장 20대 공천을 파국으로 이끈 주역인 친박계를 겨냥하자 홍문종 의원을 비롯한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서기도 했다. 

 

정두언 전 의원과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도 한국당의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공천 개혁을 강조했다. 정 전 의원은 14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당에는 아직도 (20대 국회) 공천 파동부터 시작해서 국정 농단, 탄핵 사태에 이르면서 간신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그런 사람들이 다시 내년 국회에 재등장한다면 한국당을 누가 찍겠나. 그러니까 그런 인적 혁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박사는 지난 13일 심재철 의원이 주최한 ‘내년 총선 전략’ 토론회에서 “어느 때보다 한국당의 공천 물갈이 폭이 커야 한다. 절반쯤은 박 전 대통령을 배신했고 나머지 절반쯤은 무기력하게 탄핵을 못 막아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 4월 11일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제16대 총선 개표상황실을 방문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개혁 공천으로 대권 재수 도전 발판 마련한 이회창, ‘김문수 전권 공심위원장’으로 탄핵 역풍 이겨낸 박근혜

 

1997년 대선 패배로 절치부심하던 이회창 전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2000년 16대 총선 개혁 공천으로 한나라당을 제1당으로 만들었다. 이 전 총재는 “공천 결정권은 총재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며 대구·경북의 김윤환, 구민주당계의 이기택 등 각 계파 보스들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대신 오세훈·원희룡·김영춘 등 신진인 30대의 386 세대 16명을 새롭게 공천했다. 그 결과 이 전 총재가 이끈 한나라당은 전체 273석 중 과반에서 4석 모자란 133석을 확보해 제1당이 됐다. 이 전 총재의 ‘개혁 공천’에 바탕을 둔 정권 심판론이 3년 차를 맞은 김대중 정부를 코너로 몬 것이다. 

 

2004년 3월 29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가운데)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여의도 컨테이너 당사에서 총선 선거대책위 발대식을 갖고 승리를 다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전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2004년 17대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박 전 대표는 지역구 의원 공천권을 김문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에게 위임했다. 김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취임하기 전 최병렬 전 대표가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임명했지만 박 전 대표는 이를 그대로 밀고 갔다. 박 전 대표는 비례대표 공천은 박세일 당시 서울대 교수에게 전권을 위임하며 ‘공천 불개입’ 원칙을 천명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같은 당 김재원 의원,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 정두언 전 의원, 이주호 전 교육부장관 등으로 훗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활약하는 주요 인물들이 이때 개혁 공천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100석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열린우리당의 152석에 이어 121석을 확보해 선전했다.  

 

2004년 4월 15일 저녁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 선거상황실에서 당선확실후보의 사진에 태극기를 붙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황교안의 선택은?…2004년 공천에 주목하는 한국당

 

“공천 역사는 계파 갈등의 극렬한 표현으로 얼룩졌다. 2004년 17대 총선 공천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로 한나라당이 대단히 위기 상황에 부닥쳤을 때 김문수 당시 공심위원장이 혁신 공천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 의원은 지난달 5월 열린 ‘공천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의 모두 발언에서 17대 총선 공천에 주목했다. 그는 “18, 19, 20대 공천은 친박 또는 친이 학살 공천으로 얼룩졌다”며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당을 구해낸 17대 총선 공천이 잘 됐다”고 평가했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한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20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공천권을 휘두르는 한 사람이 똑바로 정신 차리고 혁신 공천을 이뤄낸다면 총선 승리를 이뤄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이기는 공천’이 당면 과제”라며 “공천룰이 발표되고 실제 공천에 이르기까지 당내 이견은 피할 수 없다.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으로 민심을 얻는 공천이 승리의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