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을 흔히 ‘서울 내 중국’이라 한다. 이곳에는 우리가 ‘조선족’이라 부르는 중국 동포와 중국인, 그리고 소수이긴 하지만 동남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산다. 가게에 들어서면 ‘안녕하세요’가 아닌 ‘니하오’라는 인사말이 먼저 들린다. 때로는 한국말로 점원에게 말을 건네면 대답을 듣는 게 아니라 손사래 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별수 없다. 서울 한복판에 작은 중국을 꾸린 이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니. 하지만 대림동을 걷다 보면 낯선 풍경들이 어느 샌가 낯익은 풍경이 된다.
◆서울 내 중국의 낯선 풍경, 낯익은 생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대림역 12번 출구로 나와 모퉁이만 돌면 나타나는 시장은 뻔한 듯하면서 낯선 곳이다. 여느 시장처럼 점포들이 줄지어 늘어섰지만, 간판은 한글 대신 한자로, 과일 매대는 포도와 수박 대신 두리안과 리치로, 순대는 당면 대신 찹쌀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대림동을 ‘서울 내 중국’으로 달리 보기엔 이곳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골목골목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고 노는 아이들,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붙잡으려고 저렴한 가격을 연신 외쳐대는 점원, 삼삼오오 길에 모여 떠드는 사람들이 제법 익숙한 느낌이다. 혼자 다니다 보면 영화에서 본 무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괜스레 위축되었던 마음도 어느새 풀려 버린다.
대림동은 1, 2, 3동으로 나뉜다. 대림1동과 3동은 상가보다 주거지가 넓고 3동 끝자락에 있는 아파트에는 주로 내국인이 산다. 우리가 대개 대림동이라 하면 딱 떠오르는 대표적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대림2동이다. 좁은 골목들은 2~3층 정도의 단독주택들로 빽빽하고 남은 통로도 길가에 세워진 차와 자전거가 차지했다. 단독주택 밀집지에서 조금만 빠져나오면 나타나는 대림중앙시장은 휘황찬란한 색깔의 간판과 사람들로 붐비고, 시장 골목의 조그마한 공간도 펼쳐놓은 각종 음식과 물건들로 메워져 있다.
중국 동포들이 생각하는 대림동은 우리가 떠올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과 비슷하다. 외국이지만 굳이 그 나라 말을 배우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그런 곳. 대림동에는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중국 동포들이 모여들어 살게 되었을까.
대림동 이야기는 바로 옆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시작한다. 1990년대 초 일자리를 찾아 대거 한국으로 건너온 중국 동포들은 가리봉동에 있는 값싼 벌집(1인용 작은 방이 벌집처럼 배치된 주거 형태)에서 모여 살았다. 이들은 2003년 가리봉동이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돼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거주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는데, 2007년 시행된 방문취업제도로 3년간 체류할 수 있게 되자 입국자가 더 늘어 대림동과 구로동 인구까지 불어났다.
◆대림 사람들을 그대로 담은 대림중앙시장
대림중앙시장은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일자로 길게 뻗은 길부터 대동초등학교 옆길까지 사각형 공간 안에 퍼져 있다. 이곳을 여러 가게가 오밀조밀 채우고 있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단연 다채로운 음식점이다. 문과 창문을 활짝 열고 입구에 음식을 내놓은 가게들을 지나면 알싸한 마라 등 향신료 냄새가 눈만큼이나 코끝을 자극한다. 탕수육과 만두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음식도 많지만, 선지를 더 많이 머금어 훨씬 더 시커먼 순대부터 오리머리, 돼지꼬리 등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선뜻 도전하기 두려운 음식들도 있다.
중국 동포가 많은 지역인 만큼 상호에 ‘88’을 넣은 간판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중국인들은 8의 발음 빠가 ‘큰돈을 번다’는 의미의 파와 비슷해 숫자 8을 선호한다. 마작, 환전소, 여행사, 공인중개사무소, 은행, 구인사무소 등도 눈에 띈다. 대동초등학교 앞 ‘다사랑 공원’에서는 대낮부터 중국 동포 노인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밤에는 열댓 명이 음악을 틀어놓고 단체로 체조를 하기도 한다. 가장 흔한 가게는 생맥주집과 노래방이다. 특히 노래방은 대림역 주변에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즐비하다. 음주가무 즐기기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서울 도심에 비교하면 발전이 뒤처진 행색이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내국인이 점점 늘고 있다. 한 중국 동포는 전보다 대림동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것 같다고 전한다. 대림동 한 휴대폰 대리점에서 일하는 중국 동포 A씨는 “몇몇 사람 때문에 대림동 이미지가 안 좋아져 억울했는데 요즘은 전보다 한국 사람이 많이 온다”며 “한국 사람이 사는 동네엔 없는 음식이 있어서 그걸 먹으러 많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림동 사람들도 결국 타향살이가 벅찬 외지인
다사랑 공원 앞에서 슬러시를 파는 임모(64)씨는 “중국 동포가 많아서 한국 사람들은 와도 터를 잡지 못하고 떠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림동에 중국 동포가 많이 산다고 해서 땅값이 싼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중국 동포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타향살이의 어려움 때문이다. 공인중개사 B씨는 “중국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기대수익률이 낮은 것 같지만 무엇보다 여기서는 자기네들 음식도 그대로 먹을 수 있고 향수병을 앓을 확률이 낮아서 모여 산다”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공식적으로는 대림동 거주민의 80%쯤이 중국 동포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90%에 육박한다고 한다. 휴대폰 대리점 직원 A씨도 “친구나 지인이 여기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며 “형편이 되면 다른 가족이나 지인을 데려와 같이 산다”고 들려주었다.
◆대림동을 바라보는 시선
대림동에서 중국식료품점을 운영하는 한국 거주 26년 차 C씨는 “여기가 내 집”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단순히 지금 내가 사는 곳이 아니라 한국 국적도 이제는 얻고 마음의 집이 됐다는 말이다. C씨는 “한국에 오래 산 중국 동포 중에는 아예 정착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 매체들은 가끔 차별적인 시선으로 중국 동포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유발한다. 대림동의 중국 동포 커뮤니티는 영화 ‘청년 경찰’ 제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다행히 최근 tvN ‘빅포레스트’ 등 일부 TV 프로그램에선 이곳 주민들을 그저 우리 주위의 사람들로 묘사하는 등 변화된 시선을 보이고 있다.
대림동은 서울에서 이질적인 공간이다. 한글과 영어가 범벅인 서울에서 한자와 중국어로 가득찬 이 지역은 낯설고 타자화되는 곳이다. 대림동 거리에 서면 누가 타자화되는 것일까. 한국어로 물어보면 거절당하고 한국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낼 수 있는 곳이다. 오히려 소외당하는 건 한국인일 수 있다. 서로 타자화되는 대림동에서 중국 동포와 우리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레알 대륙의 맛
다채롭기로는 중국요리만한 게 없다. 서울의 ‘작은 중국’인 대림동 거리를 걷다 보면 형형색색 간판 아래 늘어선 갓 쪄낸 만두와 전병, 윤기가 흐르는 중국식 사탕, 지네구이가 눈과 코를 자극한다.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들어가면 이제는 혀와 귀의 차례다. 왁자지껄한 중국말을 배경음악 삼아 향신료 가득한 요리와 시원한 맥주를 즐겨보자. 멀리 가지 않아도 중국 여행을 하는 것처럼 오감이 즐거워진다.
-'마라샹궈' 얼얼한 혀에 맥주 한 잔 “캬∼”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떠오르는 음식은 단연 ‘마라요리’다. 대림중앙시장에서는 중국 본토식 마라요리를 맛볼 수 있다. 마라요리 음식점은 시장 가장 중심 거리에 빨갛고 노란 화려한 간판을 달고 있다. 규모도 다른 음식점들보다 크다. 그만큼 마라요리는 중국인들이 즐겨찾는 음식이다. 혀끝을 얼얼하게 하는 맛 ‘마(麻)’와 매운맛 ‘라(辣)’가 합쳐진 마라요리는 입이 마비된 것처럼 저릿저릿해지는 매운맛을 낸다. 한식의 칼칼한 매운맛과는 전혀 다르다. 고기와 중국 당면, 건두부, 두부피, 고구마, 단호박 등 각종 재료를 각자 넣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골라 향신료를 넣고 탕을 끓이거나 볶음요리인 ‘샹궈’로 먹을 수 있다. 대림동에서 만난 마라요리는 다른 곳에서 먹은 것보다 매운맛이 훨씬 강했다. 알알한 입에 차가운 맥주 한 잔 들이켜면 젓가락은 어느새 또 마라를 향하게 된다.
-'간궈감자편' 향신료 입은 납작감자 ‘겉바속촉’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먹는 감자라고 해도 간궈감자편을 무시하지 말라. 간궈, 샹궈, 훠궈….‘궈’는 냄비요리를 뜻한다. 간궈는 고추와 매운 향신료에 고기나 야채 등을 같이 넣고 볶은 음식으로, 샹궈보다 육수가 없이 바작하게 조리한다. 이 요리는 감자를 납작하게 썰어 고추와 매운 향신료를 넣고 향긋하게 볶았다. 온면과 함께 새로운 요리를 시켜보고 싶었지만, 어느 고기가 나올지 몰라 결국 소박하게 감자요리를 주문했는데 성공했다. 직원이 주방에 “간궈투더피엔”이라고 중국어로 전달하면 금방 중국 냄새 물씬 나는 감자요리가 테이블 위에 올라온다. 겉은 바작바작하면서도 기름을 머금어 속은 부드럽고 촉촉해 감자의 뻑뻑함을 덜었다. 고추향과 마라향이 적당히 묻어나는 양념이 감자 겉면에 달라붙어 패스트푸드점에서 갓 튀긴 프렌치프라이를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만족감을 선사한다.
-'온면' 새빨간 잔치국수… “국물이 깔끔해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시장 입구에 들어서 바로 보이는 음식점부터 들어갔다. 벽면엔 한자로 메뉴가 빼곡히 적혀 있다. 우리말로 설명이 달려 있긴 하지만 단번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우선 대다수 중국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온면’에 도전해 봤다. 고추기름에다 파, 매운 양념이 잔뜩 들어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들은 겁부터 낼 수 있지만, 막상 먹어 보면 깔끔한 맛에 단숨에 그릇을 비우게 된다. 향신료와 간장을 넣고 절인 삶은 달걀을 기본 반찬으로 제공하는데, 달걀 하나 까서 국물과 먹어보자. 온면은 대림중앙시장에서 5000원 내외로 즐길 수 있다.
-'관탕바오' 중국인의 소울푸드… 육즙 ‘팡팡’
대림중앙시장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바로 만둣집이다. 시장 입구에서 몇 걸음만 더 들어가면 바로 길 양 옆으로 가게 점원들이 만두를 빚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오’는 중국어로 ‘소 있는 만두’를 말한다. 관탕바오는 얇은 만두피에 고기소를 넣고 육즙을 넣어 입에 넣으면 뜨거운 육즙이 터지는 감칠맛 나는 만두다.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나오자마자 입에 넣으면 뜨거운 육즙에 입 안을 데기 십상이다. 관탕바오 위를 젓가락으로 살짝 찢어 식히고 먹어야 한다. 숟가락에 올려놓고 찢어 속에서 흘러내린 육즙도 버리지 않길 추천한다. 6000원에 8개를 주니 하나당 1000원도 안 되는 셈이다. 관탕바오와 같이 많이들 즐기는 또 다른 만두로 ‘쇼룽바오’가 있는데, 이건 관탕바오만큼 육즙이 터지진 않는다.
-'대림동식 순대' 대창에 찹쌀 꽉꽉 채운 ‘진짜배기’
본래 시장음식의 별미는 분식이다. 대림중앙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호떡이나 밀가루반죽부침 등 다양한 간식을 파는 상인들이 마트나 잡화점 사이에 순대를 팔고 있다. 흔한 간식이지만 대림중앙시장에서는 ‘진짜배기’ 순대를 판다. 진짜 돼지 대창에 당면 대신 찹쌀로 속을 꽉꽉 채운다. 찹쌀순대여서인지 찰기가 더 강하고 먹고 나면 포만감도 크다. 순대가 검붉은 색인 것은 선지를 넣어서다. 1인분만 달라고 해도 기본 크기가 있어서인지 식사 대용으로 무리 없는 제대로 된 순대다. 7000~8000원.
-'꽈배기' 바삭 노릇…찢어먹는 재미
호떡이나 밀가루반죽부침 가게에서는 꽈배기도 거의 빼놓지 않고 판다. 제대로 간판도 달지 않고 식당 앞 공간, 길모퉁이 옆 등 작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와 쉼 없이 노릇한 기름 냄새를 풍긴다. 이곳 꽈배기가 다른 점은 겉면에 설탕 대신 빵가루를 묻혔다는 점. 이 때문에 우리가 일반 빵집에서 사먹는 꽈배기보다 단맛은 덜해도 바삭바삭함은 강화됐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크기와 살아 있는 반죽의 결이다. 한 입에 베어먹기엔 커서 손으로 뜯어먹어야 편한데, 페이스트리처럼 결결이 반죽이 찢어져 뜯는 재미까지 더했다.
글=박유빈 기자, 사진=이제원 기자 y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