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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무시, 무리한 공정, 안일한 대처…'붉은 수돗물' 사태 더 키웠다 [일상톡톡 플러스]

매뉴얼을 무시한 무리한 공정과 인천시의 안일한 초동 대처가 '붉은 수돗물' 사태를 더욱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환경부는 지난달 30일부터 인천에서 발생한 '붉은 수돗물(적수)' 사태에 대한 정부 원인조사반의 중간 조사결과를 18일 발표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인천 적수 발생 사고는 공촌정수장에 물을 공급하는 풍납취수장과 성산가압장이 전기 점검으로 가동을 중단하게 되자 인근 수산·남동정수장 물을 수계 전환 방식으로 대체 공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1시 30분쯤 인천시 서구 지역에서 최초로 민원이 접수된 이후 사고 발생 4일만인 지난 2일부터는 영종지역으로 퍼졌고, 15일 만인 지난 13일부터는 강화지역에서도 붉은 수돗물 민원이 잇따랐다.

 

환경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인천시의 사전 대비와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정부 "인천시 사전 대비, 초동 대처 미흡"

 

매뉴얼이나 다름없는 '국가건설기준 상수도공사 표준시방서'에는 상수도 수계 전환 시 수계전환지역 배관도, 제수 밸브, 이토밸브, 공기 밸브 등에 대해 대장을 작성한 뒤 현장 조사를 하고 도출된 문제점에 대해서는 사전에 대책을 수립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수계전환 작업을 할 때에는 물이 흐르는 방향을 바꾸는 과정에서 녹물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토사나 물을 빼주는 이토밸브와 소화전 등을 이용해 배수를 해야 한다.

 

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제수밸브를 서서히 작동할 필요도 있다. 유속이 바뀌면서 녹물이나 관로 내부에 부착된 물때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시는 수계를 전환하기 전에 이런 사항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밸브 조작 위주의 계획을 세우는 데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밸브를 조작하는 단계별로 수질 변화를 확인하는 계획도 세워두지 않아 사고를 유발한 물때 등 이물질 발생에 제때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돗물의 이동 경로였던 북항분기점에서 밸브를 열었을 때 일시적으로 정수탁도가 0.6NTU로 먹는물 수질기준(0.5NTU)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수장에서는 별도의 조치 없이 물을 공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환경당국은 "수계전환에 따라 탁도가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는데도 초동 대응이 이뤄지지 못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무리한 수게전환, '붉은 수돗물' 사태 직접적인 원인

 

당국은 결국 무리한 수계전환이 '붉은 수돗물'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평소 공촌정수장에서 영종지역으로 수돗물을 공급할 때는 물이 흐르는 방향을 그대로 살리는 자연유하방식으로 공급하지만, 이번에 수계를 전환할 때는 압력을 가해 역방향으로 공급했다.

 

역방향으로 수계를 전환하려면 흔들림이나 충격 등의 영향을 고려하고 이물질이 발생하는지를 따져 보면서 정상상태가 됐을 때 공급량을 서서히 늘려가야 한다.

 

그러나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10분 만에 밸브를 개방했고 유량도 시간당 1700㎥에서 3500㎥로 늘렸다. 

 

이 때문에 유속이 1초당 0.33m에서 0.68m로 배 이상이 빨라졌고 관벽에 부착된 물때가 관 바닥 침적물과 함께 인천 검단·검암지역 수돗물에 섞여 쏟아져 나왔다.

 

공촌정수장이 재가동되자 기존의 방향으로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관로 내 혼탁한 물이 영종도 지역으로까지 공급됐다.

 

지난 12일 오전 인천시 서구 한 중학교 급식실 수도에 씌워둔 하얀색 마스크가 까맣게 변해 있다.

 

당초 정수지 탁도가 기준 이하로 유지되면서 정수지와 흡수정의 수질은 이상이 없었지만 탁도계마저 고장 나 정확한 탁도 측정이 이뤄지지 않았고, 공촌정수장 저수지와 흡수정이 이물질 공급소 역할을 한 정황도 확인됐다.

 

환경부는 "(정확한 탁도 측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흡수정의 이물질이 사고 발생 이후 지속해서 정수지, 송수관로, 급배수관로, 주택가로 이동했다"며 "이로 인해 사태가 장기화했다"고 설명했다.

 

◆배수지점 제대로 확인 못해…체계적 방류 시간 지연, 사태 장기화 요인

 

수도관의 높고 낮음을 알아볼 수 있는 지도가 없어 배수지점을 제대로 확인 못하면서 체계적인 방류를 하기까지 시간이 지연된 점도 사태가 장기화한 요인으로 꼽혔다.

 

정부 원인 조사반은 이런 사실을 확인한 뒤 지난 13일 인천시에 통보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이날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인천시) 담당 공무원들이 매너리즘에 빠진 건지 문제의식 없이 '수계 전환'을 했다"며 "그에 따라 발생할 여러 문제점이 충분히 예상 가능한데도 무리했다. 거의 100% 인재"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매뉴얼과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겠지만, 인천시 담당자들은 이미 있는 매뉴얼도 지키지 않았다"며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천시는 이날 정부 발표 직후 '붉은 수돗물' 사태 책임을 물어 김모 상수도사업본부장과 이모 공촌정수사업소장을 직위해제했다.

 

신임 상수도사업본부장에는 17년 이상 상수도 업무경력을 지닌 박영길 전 에너지정책과장을, 공촌정수사업소장에는 김재원 대기보전과장을 임용했다.

 

◆이물질 제거작업, 이달 하순엔 수돗물 공급 정상화할 듯

 

환경부는 인천시와 함께 이물질 제거작업을 거쳐 이달 하순에는 정상화된 수돗물이 공급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공촌정수장 정수지 내의 이물질부터 우선 제거한 뒤 송수관로, 배수지, 급수구역별 소블럭 순으로 오염된 구간이 누락되지 않도록 배수작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22일부터는 배수 순서를 정해 단계적으로 공급을 정상화하고, 늦어도 29일까지 수돗물 정상 공급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고 초기부터 지원해 오던 병입(병에 담음) 수돗물, 수질분석장비, 급수차 등도 지속해서 지원할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전문가 합동 원인조사반 조사결과 백서를 올해 7월까지 발간·배포하고, 식용수 사고에 대비한 지자체·유관기관 공동연수회도 내달 중 개최할 계획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