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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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시장 재선거 野 승리… 에르도안 ‘치명상’

이마모을루 후보 54% 당선… 與후보와 격차 9%P / 에르도안 ‘정치적 고향’ 불패 깨져 / 경제난·고물가 등에 민심 등 돌려 / 野후보 실용주의 성향 높은 점수 / AKP 후보 전과 달리 패배 시인 / 英 가디언 “터키 민주주의 새 희망”

‘21세기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이스탄불 광역시장 재선거 결과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23일(현지시간) 치러진 터키 이스탄불 광역시장 재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했다. 야권 후보의 당선이 최종 확정되면 이스탄불 광역시는 25년 만에 에르도안 세력의 시정 지배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이날 개표가 100% 진행된 가운데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 에크렘 이마모을루(49) 후보가 과반이 넘는 54.21%를 득표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 후보 비날리 이을드름(64) 전 총리는 44.99%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이번 재선거에서 두 후보 간 득표율 차는 약 9.2%포인트(약 80만표)로, 지난 3월31일 있었던 지방선거 당시(약 0.2%포인트, 약 1만3000표)보다도 오히려 격차는 더 벌어졌다. 앞서 야당의 반발에도 터키 최고선거위원회(YSK)는 지난달 6일 선거 결과를 무효로 결정하고 재선거를 명령하며 이번 선거가 실시됐다.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하자 투표소 감시원 자격요건 위반 사례가 많았다며 AKP가 ‘뒤집기’를 시도한 것이다.

“고맙습니다”… 환호하는 지지자들에 답례 23일(현지시간) 치러진 이스탄불 광역시장 재선거에서 승리한 터키 제1야당 공화인민당의 에크렘 이마모을루 후보가 거리를 가득 메운 지지자들 환호에 답하고 있다.
이스탄불=EPA연합뉴스

이을드름 전 총리는 재선거에서 또다시 자신이 뒤진 것으로 나오자 “축하하고 행운을 빈다”며 지난 선거와 달리 신속히 패배를 시인했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비공식 결과로 볼 때 선거에서 이긴 이마모을루에게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마모을루 후보는 지난 3월 지방선거 전까지 터키 정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소규모 건설업을 운영하는 집안 출신인 이마모을루는 2009년 지역 정치에 입문한 뒤 2014년 이스탄불의 중산층 지역인 베일리크뒤쥐의 구청장이 됐다. 하지만 이스탄불 시장이 되기 위한 격렬한 싸움 속에서 살아남은 이마모을루 후보는 이후 몇 년 만에 에르도안 대통령을 위협할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도전자가 됐으며, 터키 민주주의의 예상치 못한 새로운 희망이 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평가했다.

 

변화를 갈망하는 이스탄불 시민들의 마음이 이번 선거 결과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인구 1500만명에 이르는 터키 최대 도시이자 경제·문화 중심지인 이스탄불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치 신인’ 시절이던 1994년 시장에 당선된 이후 줄곧 에르도안 세력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터키계 미국인 정치학자 소너 카가프타이는 “터키는 거의 20년 동안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 지도자에 의해 통치됐다. 그(에르도안)는 법치주의를 약화시키고 언론을 장악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AKP를 포함한 ‘에르도안 정당’ 소속 시장이 약 25년 동안 이스탄불을 통치했지만 경제난은 더 심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영 논리나 이념에 집착하지 않는 실용주의 성향의 이마모을루 후보가 노동 계층 유권자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억압적인 정책에 불만을 품은 소수 쿠르드족도 이마모을루를 지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임국정 기자 24hou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