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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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파멸… ‘단란한 가정’ 가면 뒤 중산층의 연약함 폭로 [한국영화 100년]

⑦ 김기영 감독의 ‘하녀’ / 근대화 낙관 담은 영화 범람한 60년대초 / 가족드라마에 공포·스릴러 적용 새 시도 / 시대 앞서가며 흥행에도 성공한 선구작 / 표면적으로 행복해보이는 도시 중산층 / 하녀 존재 통해 허약한 기반·불안 드러내 / 시대적 억압 뚫고 韓 ‘작가주의 영화’ 개척

◆1960년과 영화 ‘하녀’

1960년은 4·19혁명으로 기억되는 해다. 한국영화사에서는 1959년을 기점으로 제작 편수가 100편을 넘어서며 다양한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승만 정권 말기에 기획된 ‘오발탄’이 4·19혁명을 계기로 시나리오를 개작해 5·16군사정변 전에 개봉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가족 멜로드라마의 신기원이 된 ‘로맨스 빠빠’, 청춘영화의 효시 ‘젊은 표정’, 문제적인 법정 멜로 ‘표류도’ 등이 1960년에 개봉했고, 세태 풍자 드라마 ‘삼등과장’과 컬러 시네마스코프 시대극 ‘성춘향’ 등이 4·19 이후의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제작됐다. 이 영화들은 주제, 장르, 기술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새 시대에 대한 희망과 시도를 품고 있었다. 이는 전후 재건이 일단락된 시점에서 당시 사회에 비등하고 있던 근대화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반영된 것이었다.

근대화란 정치에서의 민주화와 경제에서의 산업화를 동시에 의미한다. 당시 근대화에 대한 전망이란 이 두 가지에 대한 기대가 섞여 있는 것이었고, 그것이 1960년대 초의 시대정신이었다. 그래서 이 시기 영화에서는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분위기와 함께 경제 근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를 향한 욕망이 동시에 감지된다. 이 상충돼 보이는 갈망 아래 흐르는 것은 계몽과 발전에 대한 믿음이다. 국민학교 의무교육이 본격화되고, ‘아는 것이 힘’이란 표어가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구호와 함께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바로 이때 등장한 영화가 ‘하녀’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에서 본처가 집을 비운 어느 비 오는 날 하녀가 주인 남자를 유혹하고 있는 모습.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공포·스릴러로 선취한 근대의 균열

‘하녀’ 역시 근대화의 기운과 욕망을 담고 있지만 당시 주류를 이뤘던 분위기와는 다른 불안과 공포를 보여 준다. 이는 스릴러란 장르에서 비롯되는 면이 큰데, 가족 드라마의 틀에 공포·스릴러를 적용했다는 것 자체가 김기영 감독이 남다르게 당대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스릴러는 근대의 합리성에서 출발한 장르이지만 현대로 올수록 근대 합리성의 모순과 균열을 드러내며 결국 그 실패를 목도하게 하는 장르다. 한국 스릴러 장르가 20세기 말에야 개화했고, 김기영 영화가 새롭게 발견된 것 또한 이즈음이란 점을 상기하면 1960년 ‘하녀’의 등장이 얼마나 놀라운 선취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김기영 감독은 6·25전쟁 당시 미국 공보원(USIS)에서 문화영화 제작에 참여하면서 영화에 입문해 1955년 미 공보원이 제작한 영화 ‘죽엄의 상자’로 데뷔했다. 이후 ‘양산도’(1955), ‘황혼열차’(1957), ‘초설’(1958), ‘십대의 반항’(1959)으로 이어지는 문제작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김기영 감독의 초기작 대부분은 현전하지 않고 프린트(극장 상영용 필름)가 남아 있는 건 ‘죽엄의 상자’와 ‘양산도’뿐인데, 그나마 ‘죽엄의 상자’는 사운드(sound·음향)가 손실된 상태다.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9번째 작품으로 그의 영화 스타일을 보다 뚜렷이 드러내며 흥행에서도 성공한 영화이자 온전히 보전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하녀’에서 하녀(오른쪽)가 주인 남자를 차지하면서 본처와 하녀의 처지가 전도된다. 하녀의 옷차림도 흰옷에서 검은 옷으로 달라져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근대화 시작점에서 근대의 탈구를 묘파하다

음악 교사 남편과 아름답고 근면한 아내, 슬하의 1남1녀, 새로 지은 2층 양옥, 피아노와 TV까지 갖춘 ‘스위트 홈’(sweet home). 그곳에 하녀가 들어온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과 노동력이 동시에 필요한데 아내는 재봉틀로 돈을 버는 대신 가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값싼 하녀로 충당한 것이다. 그런데 하녀가 주인 남자를 유혹해 임신한다. 여기까지는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삼각관계를 다룬 멜로드라마로 볼 수도 있다. 당시는 근대화를 주도할 계몽적 가부장을 원하고 있던 때이므로 남자를 사이에 둔 여자의 갈등이 흔히 설정됐고 쉽게 해결되기도 했다. 그러나 ‘하녀’는 그런 일반적인 궤도를 따라가지 않는다. 하녀(이은심 분)는 주인 남자(김진규 분)를 유혹한 뒤 점차 지배자의 위치에 선다. 놀라운 건 그녀는 당하면 당할수록 더 강해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남자에게 버리지 말아 달라고 매달리며 첩으로서의 처우만을 요구하다 본처(주증녀 분)의 꼬임에 낙태를 한 뒤에는 본처 아들(안성기 분)을 죽인다. 급기야 경찰에 알리겠다고 협박해 남자를 차지하고, 본처가 자신을 살해하려는 낌새를 눈치채고 역습한다.

본처의 반응 또한 예사롭지 않다. 본처는 아들이 죽은 상황에서도, 남편을 빼앗긴 국면에서도 ‘가정’을 지키려 한다. 그녀에게 가정은 피아노와 TV를 갖춘 2층 양옥집이고, 10년간 재봉틀을 돌려 만든 ‘공든 탑’이다. 그 공든 탑에서는 아들도 남편도 부수적이다. 죽은 아들은 어차피 돌아올 수 없고, 남편은 집 안에서 다른 여자와 동침하는 한이 있어도 직장에서 해고돼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월급을 받아 오지 못하고 그녀의 공든 탑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영화 ‘하녀’에서 주인 남자를 유혹하는 경희(엄앵란 분)를 엿보는 하녀(왼쪽). 경희는 주인 남자를 짝사랑하는 여공으로, 하녀를 주인 남자에게 소개한 장본인이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이렇게 보면 이 영화는 도시 중산층 가정의 위태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고 하지만, 도시에서 중산층에 진입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써야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며 도시화와 산업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도시 가정에서 ‘하녀’를 고용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고용이랄 것도 없이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것만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노동력이 넘쳐났다. 그런데 그렇게 ‘하찮은 하녀’ 하나 때문에 10년간 노력해 얻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을 만큼 도시 중산층의 계급적 기반이 허약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폭로한다. 2층 집의 과장된 인테리어와 가파른 계단은 이 가정의 부박한 욕망과 그 아슬아슬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시키는 재봉틀, 중요한 장면 사이에 인서트(insert·삽입)되는 기차와 기적 소리는 이 영화가 드러내는 불안과 공포의 맥락을 상기시킨다. 다들 근대화에의 욕망에 들떠 있던 시기에 그 안에 잠재된 모순을 간파하고 불안을 감지한 건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명민함일 것이다. 요컨대 ‘하녀’는 전후 한국 사회의 근대화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계급, 노동, 성 역할에 걸친 아비투스(habitus·습속)의 변동과 탈구(脫臼)를 예견하고 묘파해낸 영화다.

◆작가주의 장르영화의 ‘정전’

이후 김기영 감독은 ‘하녀’를 원전으로 ‘화녀’(1971), ‘충녀’(1972), ‘화녀 82’(1982), ‘육식동물’(1984)을 계속 내놓음으로써, ‘하녀’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원형으로 자리 잡는다. 그에게는 ‘마성’, ‘기괴함’, ‘그로테스크’(grotesque·기괴한) 같은 단어들이 따라다니게 된다. 그가 초기에는 사회물 경향의 영화를 만들었고,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에서도 그런 면이 엿보이는 것을 보면 1970~80년대에 ‘하녀’ 시리즈에 주력한 데에는 시대적 억압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여성 괴물’을 중심으로 인간의 생태를 치열하게 탐구한 건 1970~80년대를 뚫고 나간 그만의 작가주의적 방식이었다.

이 영화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이끄는 세계영화재단(WCF)의 지원으로 복원이 이뤄졌고, 2008년 제61회 칸국제영화제 클래식 섹션에 초청되면서 세계적으로도 알려졌다. ‘하녀’의 표상은 임상수의 ‘하녀’(2010)와 박찬욱의 ‘아가씨’(2016)로 이어졌는데, 최근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까지 ‘기생충’(2019)의 공간 재현은 ‘하녀’의 계단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밝히면서, ‘하녀’는 21세기 한국의 작가주의 장르영화의 계보를 확실히 형성했다. 명실상부한 정전(正典)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박유희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