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의사, 경찰, 전직 유명 앵커···
다른 직업에 비해 보다 높은 도덕성이나 사회적 책무를 기대하는 직업군에서도 몰래카메라(몰카) 촬영 범죄 사건이 잇따르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듯해 보이는 몰카 범죄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몰카 행위를 단순한 호기심이나 순간적인 실수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의식과 특히 적발돼도 처벌 수위가 매우 약한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의사 이제는 전직 앵커…“억압된 욕구의 잘못된 분출”
김성준 전 SBS 앵커는 지난 3일 서울지하철 2호선 영등포구청역 승강장에서 여성 승객 하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 처벌특별법 위반)로 입건됐다. SBS는 그가 제출한 사표를 8일 수리했으며, 김 전 앵커는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피해자분과 가족분들께 엎드려 사죄드린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실히 경찰 조사에 응하겠다. 참회하면서 살겠다”고 고개 숙였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직업윤리가 요구되는 사람들의 몰카 범죄는 그동안 끊이질 않았다. 지난 3월에는 경기지역 한 경찰서 A경장이 지하철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체포됐으며, 5월에는 경찰대 학생이 서울 중구 한 술집의 남녀 공용화정실에 만년필형 카메라를 설치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양천구의 한 산부인과 원장 B씨가 디지털카메라로 환자의 신체를 몰래 찍다가 덜미를 잡혔다. 울산에서도 한 대형병원 전공의가 간호사들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 등을 촬영하기 위해 간호사 휴게실로 사용되던 탕비실에 소형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2017년 7월에는 서울의 한 지방법원 판사 C씨가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여성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가 적발됐다.
한국심리과학센터 현문정 범죄심리학박사는 9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몰래카메라 범죄는 계획적이기보다 충동적인 게 더 많다”며 “일각에서는 (몰래카메라가) ‘상습도박’처럼 (범법 유혹을) 못 버티는 범죄라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2016년 발표한 범죄 판례 분석 결과에 따르면 몰카 범죄 재범률은 무려 54%에 달했다.
현 박사는 특히 나름 직업 윤리를 요청받는 사람들이 몰카 범죄에 손을 대는 것과 관련해 “윤리의식을 지켜야 한다는 억압감에 시달리던 중 성적인 욕구나 충동이 몰카처럼 다른 쪽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며 “타인 신체를 찍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느끼겠지만 결국 ‘잘못된 성 의식’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는 상처 못 잊는데…‘솜방망이 처벌’이 부추겨 지적
몰카 등 ‘디지털 성범죄’는 신속성과 확산성, 영원성 등의 속성 탓에 피해자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고 경우에 따라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할 만큼 심각한 데도 끊이지 않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이 우선 꼽힌다.
지난달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개최한 ‘디지털 성범죄와 양형’ 심포지엄에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백광균 판사는 서울중앙지법의 몰카 사건 판결문 164건(2018년1월~2019년4월)을 전수조사 한 결과, 벌금형(46%)과 집행유예(41%)가 대부분이며 실형은 10%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이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규정으로 몰카를 중범죄로 보지만, 실제 처벌은 입법취지에 크게 어긋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처벌 수위가 매우 약하다보니 디지털 성범죄를 시도하거나 저지른 사람들에게 ‘범행 현장에서 안 들키면 그만’이라거나 ‘들켜도 돈만 내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 박사는 “(법원에서) 동일하게 양형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며 어린이와 청소년 중에서도 스마트폰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감안,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일찍 접하므로 올바른 사용법과 함께 ‘몰래카메라를 찍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