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정부·여당의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12일 새벽 ‘2.87% 인상’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이 표결에서 사용자위원 안에 손을 들어준 것인데, 경제위기 때에 버금가는 낮은 인상률이라는 점에서 배경과 향후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정부가 속도조절론에 나선 것은 한국 경제상황이 안팎으로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안으로는 경기 불황 속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자영업자가 줄도산하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이 늘고 있다. 한국의 고도성장을 견인해온 미국과 일본이 이젠 국내 정치, 경제적 이유로 우리를 옥죄고 있다.
내우외환 속에 활력을 잃은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2% 중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을 2.4∼2.5%로 낮췄고,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2.4%에서 2.0%로 하향조정했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한민국 경제 형편이 여러 가지로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가야 할 경제사회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소 속도 조절과 방향 조절 같은 것들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최저임금위 임승순 상임위원은 “IMF 때는 금융파트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실물파트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최근 중국과 미국의 무역마찰이나 최근 일본 (무역제재) 부분이 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얘기가 많아 그런 부분들도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정부 들어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으로 최저임금이 29.1%나 급등한 것도 속도조절에 힘을 실었다. 최저임금위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올해 인상률이 낮다고만 볼 것이 아니다. 지난 3년간 인상률을 평균하면 9.9%기 때문에 추세를 합쳐서 이해해야 한다”면서 “최저임금 덩어리가 많이 커졌다. 예전에는 야구공이었는데 지금은 농구공이다. 이런 실상까지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가져올 후폭풍을 간과한 채 ‘임기 내 1만원 달성’ 공약에 맞춰 치밀한 대책없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2017년 16.4% 오른 7530원, 2018년 10.9% 상승한 8350원으로 결정하면서도 부담을 호소하는 경영계의 목소리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일자리 안정자금 등 자영업자 지원대책은 한 박자 늦게 나와 실효성을 떨어뜨렸다.
결국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와 영세 소상공인들의 원성이 극에 달하고, 고용지표가 부진하자 정부는 속도조절론으로 선회한다. 당·정·청의 주요 인사들이 줄기차게 동결 또는 속도조절론을 내놨고,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KBS 대담에서 “공약이 2020년까지 1만원이었다고 해서 그 공약에 얽매여 무조건 그 속도대로 인상돼야 한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다보니 이날 결정된 ‘2.87% 인상’안은 결과적으로 지난해(10.9%)보다 무려 8.03% 포인트나 급락하게 됐다. 제도 도입 이후 전년 대비 최대의 낙폭을 기록하는 흑역사를 쓰는 진보정권이라는 역설을 빚게 만들었다.
문재인정부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실현 공약은 어려워졌다. 내년과 2021년 심의에서 각각 7.9%의 인상이 이뤄져야 가능한데 현재 경제상황으로 봐서는 어렵다. 노정 간 갈등의 골만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민노총은 “이미 국회에는 최저임금제 개악이 예정돼 있다”면서 “민노총은 최소한의 기대조차 짓밟힌 분노한 저임금 노동자와 함께 총파업을 포함한 전면적인 투쟁을 조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시간 단축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앞으로 굵직한 현안 처리 과정에서 노정간 정면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