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하면서 양국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여부가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제한 조치 후 추가 보복의 일환으로 안보우방국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도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치면서다.
양국의 GSOMIA는 한·일이 주로 북한의 핵·미사일 동향 등 2급 이하의 군사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협정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안보 부문에서 한국을 더는 신뢰할 수 있는 국가로 분류하겠다는 의미여서 이 협정 유지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GSOMIA 파기 통보기한 40여일 남아
16일 국방부에 따르면 GSOMIA는 국가 간 상호 정보 교환 방법과 교환된 정보의 보호·관리 방법을 정하는 기본 틀을 의미한다.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별 검토를 거쳐 같은 수준의 군사정보를 주고받는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등 33개국과 보호 협정 또는 약정을 체결한 상태다. 이 중 미국과 독일 등 10여개국과는 1급 정보를 공유하지만 나머지는 2급 이하의 정보를 주고받는다.
일본과의 GSOMIA 지난 1989년 우리 정부가 먼저 일본 측에 제안했다. 당시 일본이 거절한 뒤 한동안 논의되지 않았다. 이후 2006년과 2009년에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도발이 거듭되면서 다시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이명박정부 때인 2011년 양국 국방장관 간 관련 협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지만, 2012년 체결 직전에 밀실협정 논란이 일면서 서명식 50분 전에 폐기됐다.
다시 얘기가 나온 것은 박근혜정부 때인 2016년이다. 그해 북한은 두 차례의 핵실험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포함해 20여 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이러자 미국은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한·일 GSOMIA를 연내 체결할 것을 요청했다. 논의는 빠르게 진행됐다. 같은 해 10월27일 정부는 GSOMIA 체결 논의 재개를 결정했고, 27일 뒤인 11월23일 양국은 GSOMIA에 최종 서명했다. 당시에도 반일 여론 비등하고 야권 등을 중심으로 졸속 논란이 일었지만 탄핵정국에 가려 유야무야 넘어갔다. 국방부는 당시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자평하면서도 일본의 첨단 감시자산을 통한 대북정보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은 물론 미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양국이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GSOMIA는 어느 한쪽이 파기 의사를 통보하지 않으면 1년 단위로 자동 연장된다. 파기 의사는 서면으로 통보하며 체결일인 11월23일을 기준으로 90일 이전(8월24일)까지 통보해야 한다. 체결 후 2017년과 지난해에는 자동 연장됐다. 그러나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올해는 연장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GSOMIA 폐기까진 이르지 않을 듯”
GSOMIA 연장이 불투명한 배경에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기정사실화하는 데 있다. 화이트리스트는 일종의 전략물자 우대국가 목록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배제될 경우 수출 금지 품목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전략무기 개발 등에 이용될 수 있는 소재나 부품에 대해 일본 당국이 관리 및 통제를 하게 된다. 이와 함께 한국을 더 이상 안보우방국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군 소식통은 “2017년과 지난해엔 자동연장이 됐지만 올해의 경우 초계기·레이더 조사 논란으로 이미 한 번 한·일 군 당국의 갈등이 빚어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최근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흐르면서 GSOMIA 연장은 가늠하기 어렵다는 말들도 나온다”며 “일본 측에 아직 이와 관련한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지만, 우리 쪽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GSOMIA 폐기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근식 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은 “일본이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GSOMIA 폐기에 대해서는 먼저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국장은 이어 “한·일 간 GSOMIA 체결 배경이 당시 북한이 핵·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미사일방어(MD)체제 강화 및 한·미·일 정보교환을 위해 요청한 것”이라며 “일본도 한국에 대해 보복성 조치를 하고 있지만 한·미·일 공조까지 균열시키면서 미국을 자극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GSOMIA는 가만히 있으면 자동으로 연장되는 협정이기 때문에 굳이 일본 국민들에게 관심이 없는 GSOMIA 파기 카드까진 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GSOMIA는 통상·외교 마찰과는 별개로 보는 것이 맞다”면서도 “서로에게 득이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연장되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요소들이 생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호사노 유지 세종대 교수는 “GSOMIA 연장 여부를 현 상황에서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 “남은 40여일의 기한 동안 한·일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