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16일 일본이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제안한 ‘제3국 중재위원회 구성안’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일본이 오는 18일로 정한 제3국 중재위 카드를 우리 정부가 사실상 거부함에 따라 수출 규제 조치를 확대할지 주목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제3국 중재위 제안에 대해 명확히 말하자면, 기존 정부의 입장에서 변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중재위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인가’라는 거듭된 질문에 “그렇다. 명쾌하게 결론이 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동안 청와대 내부에서 중재위 카드에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공식적으로 거부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된 ‘1+1+α’(한국 기업+일본 기업+한국 정부) 방안에 대해서도 “일부 언론에서 정부가 검토한다고 기사로 나왔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아 검토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이 배상하는 방안을 정부가 일본 측에 제안했던 것과 관련해선 “피해자들의 동의가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용 불가 입장을 별도로 일본 측에 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이 같은 설명은 바로 직전 핵심 관계자의 제3국 중재위 관련 발언과 배치된다는 분석이다. 핵심 관계자는 앞서 “현재 신중히 검토하는 사안”이라며 논의의 여지를 남겨뒀었다. 이 관계자는 지난 5월21일에도 일본의 제3국 중재위 요청에 대해 “(정부가)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검토해 볼 수 있다고 한 전제는 일본이 이(1+1 방안을)를 수용한다면 검토해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세계적인 신용평가사와 미국 언론의 경고장도 이어졌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는 장기적으로는 일본 업체들이 손해를 볼 것이라고 15일(현지시간) 전망했다. 피치는 “이 분쟁이 고조되면 일본 수출업자들은 잃을 게 많다”며 “반면 한국 업체들은 공급자를 바꾸려고 노력할 것이며, 조정 기간을 거쳐 일본산 소재를 대신할 대체 공급자를 찾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부 일본 업체가 대만, 싱가포르, 한국 등의 공장에서 규제 대상 소재를 생산하는 만큼 양국 간 무역갈등이 길어지면 장기적으로 일본 업체에 타격을 주고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피치는 또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를 공급하는 일본 업체들, 메모리칩과 디스플레이를 구매하는 일본 업체들이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 수출 규제가 장기화할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도 이날 “일본의 수출 규제는 수십년간 무역 및 경제성장을 떠받쳐온 글로벌 무역 규칙에 도전이 되고 있다”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자산업에 필수적인 화학소재에 대한 한국의 접근을 제한하며 자유무역에 타격을 가한 세계 지도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에게는 아베 총리의 행보가 무역을 ‘곤봉’(압박수단)으로 전환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하는(모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달중 기자, 워싱턴=정재영 특파원da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