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리브라는 지위나 신뢰성이 거의 없다. 페이스북이나 다른 기업이 은행이 되려고 하면 다른 은행처럼 새로 은행 인가를 받아 금융 규제를 받아야 한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리브라는 은행 계좌를 대체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 블록체인 기술은 피할 수 없다. 미국이 개발과 규제에서 선점하지 못하면 다른 이들이 트렌드를 이끌게 될 것이다.”(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데이비드 마커스 페이스북 부사장)
페이스북의 자체 가상화폐(암호화폐·가상통화) 리브라는 금융 혁신을 촉진하는 ‘메기’일까, 시장을 독점하는 ‘포식자’일까. 겨우 청사진만 공개된 리브라 발행 소식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빅테크(Big tech)’ 기업의 핀테크 진출 계획에 우려가 쏟아지자 페이스북은 16일(현지시간) 미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규제 우려가 해소되고 적절한 승인을 받기 전에는 리브라를 발행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고개를 바짝 낮췄다고 미국 CNBC 등이 보도했다.
#결제·지급에서 시작해 금융 플랫폼까지
지난달 18일 페이스북이 공개한 가상화폐 리브라의 백서는 ‘새로운 글로벌 화폐’를 지향한다는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리브라의 백서는 “리브라의 미션은 전 세계에서 통용할 수 있는 간편한 형태의 화폐와 금융 인프라를 제공해, 전 세계 모든 이에게 금융의 자유를 주는 것”이라며 “온라인으로 저렴하고 더 빨리 송금할 수 있게 해줄 것이며 은행 계좌가 없거나 은행에 거의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금융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소개했다.
향후 현금 없이 리브라를 이용해 개인 간 송금이나 물건 구매, 대중교통 이용까지 다양한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칼리브라(리브라를 이용하기 위한 디지털 지갑)는 저렴한 비용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리브라를 보낼 수 있게 한다”며 “향후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거나 커피를 구입하는 등 사람과 기업을 위해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리브라가 출시되면 약 24억명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리브라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숫자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은 2009년이지만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거래만 될 뿐 거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도 2000가지가 넘지만 사용처가 없거나 한정된 커뮤니티 안에서 제한적으로 쓰일 뿐 실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사례가 없다. 이 분야에서 시장을 주도하는 플랫폼이 없다는 의미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센터장은 “페이스북 사용자 수를 봤을 때 리브라가 성공하면 세계 어느 나라 법정화폐보다도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며 “암호화폐 시장이 시장으로서 안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브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회사들도 기존 금융분야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곳들이다. 비자, 마스터카드, 페이팔, 우버, 이베이 등 28개 기업이 연합 형태로 참여한다.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결제, 대출 등 금융분야에서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금융 플랫폼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진 셈이다.
#리브라, 가상화폐의 미래 될 수 있을까
페이스북과 같은 빅테크 기업이 리브라를 이용해 금융 사업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 당국은 페이스북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며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
미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셰로드 브라운 미 상원의원은 “페이스북은 그들이 갖고 놀고 있는 기술의 힘을 존중하지 않는다”며 “페이스북은 성냥갑에 손을 댄 아이와 같이 여러 번 집안을 불태웠고 매번 이걸 ‘학습 경험’으로 불렀다”고 질타했다.
페이스북은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했던 전력이 있다. 이용자 금융정보가 결합되면 더 막강해지며 유출 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페이스북은 리브라를 이용한 금융데이터는 리브라 연합에서 별도로 관리해 따로 볼 수 없고, 페이스북의 소셜데이터와도 분리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상화폐는 개인 간 거래(P2P) 방식이기 때문에 기존의 감시·감독체계로는 관리나 통제가 어렵다. 가상화폐로 거래할 경우 개인 간 송금이 간단하고 거래 기록은 남지만 거래 주체의 신원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가상화폐가 자금 세탁이나 테러 자금 조달과 같은 범죄에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던 한국 금융당국도 리브라가 금융시스템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참고 보고서 성격으로 공개한 자료를 통해 “리브라는 기존 가상통화의 문제를 해결, 현재 어떤 가상통화보다 상용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면서도 “가치를 보장하는 방식이 불분명하고 향후 거래소를 통한 거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돼 투기 등으로 인해 본질적 가치와 괴리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금융위는 또한 금융·외환위기가 오면 법정화폐에서 리브라로 자금이 쏠리는 ‘뱅크런’이 발생하거나 환율·자산가격의 변동성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리브라가 금융 시스템을 흔들 수 있다는 이런 우려 때문에 페이스북이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앞길은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페이스북의 플랫폼으로서의 강력한 힘에 대해 시장에서 우려가 강하기 때문에 반독점 등과 관련한 규제가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리브라 발행이 현실화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제시한 여러 금융서비스보다는 기능을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기업의 이 같은 시도가 이어진다면 진통을 거쳐 가상화폐를 비롯한 블록체인 기술이 향후 우리의 삶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하진 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페이스북같이 큰 글로벌 회사가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며 “결국은 리브라든 다른 방법이든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방식이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백소용·이희진 기자 swinia@segye.com